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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Sep 19. 2020

부모라는 권력

그 통제권은 어디까지 일까

요즘 부모교육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 스스로 조금 다른 세상에 살았나 하는 느낌적 느낌이다.

돌아다보니 나는 아이와 크게 싸운 적이 없었다. 그게 어디에서 연유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생각해 보니 나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정말 이야기를 많이 했다. 태어나 갓난아이일 때도 상황을, 과정을 정말 설명했다. 신생아에게 뭘 그리 열심히 말을 하냐고 우리 시어머니가 뭐라 할 정도였다.

두 달 세 달 된 아이에게도, 아침 출근할 때 조금 늦은 날은 말하고 나갔다.

"오늘은 엄마가 일이 바빠서 늦어. 엄마가 오면 너는 잘 거고. 그래도 엄마는 너 데리러 여기 올 거야. 아침에 눈 뜨면 엄마는 옆에 있을 거니. 오늘 할머니랑 잘 놀아."

그렇게 열심히 설명하고 나갔고. 일이 늦어서 자정이나 되어서 시집에 도착해도 어김없이 자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갔다. 그게 힘들면 나는 거기 시집에서 잤다. 눈 뜨면 내가 옆에 있기로 했으니까. 피곤한데 유난 뜬다고 시어머니 타박도 많았다. 그러나 아이 감성 안에 엄마가 언제나 네 편이고, 너 정서에 영향을 미칠 것은 안 할 거야,라고 다짐한 것이 엄마 역할의 첫 번째 내 사명서였다.

아이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부모 역시 아이를 선택해서 만난 것이 아닌 것이니 서로 간의 감정싸움은 되도록 안 생기게 아이가 성인 될 때까지는 내가 내 감정 조율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참으로 지독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가 바닥에 펼쳐 두고 잠든 퍼즐, 장난감 내 임의로 한 번도 치워본 적이 없다. 치우려면 물어보고 치웠다. 아니면 물어보고 같이 정리하는 것으로. 유치원 갈 때 양말 짝짝이 신고 간 적도 있다. 그것도 본인 판단으로 부끄럽다 싶으면 바꿔 신더라. 겨울에 반소매 티셔츠 겉옷 안에 입고 간 적도 있고. 그거 내가 하지 마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싸울 일이 애당초 없었다. 이게 아이가 하나라서 그런다고 하는데 그 부분에는 나는 동의 안 한다. 아이가 하나이니 아이 장난감, 옷 더 많이 개입할 수 있었다. 행동은 자신이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본인이 진다, 는 생각을 많이 한 엄마였다.

가끔 시집에 아이 큰 엄마가 오면 언제나 전쟁이 났다. 왜 내 장난감을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고 치웠느냐, 왜 내 신발을 물어보지 않고 물에 담갔느냐부터 둘이서 맨날 싸웠다. 그러면 형님은 나더러 애가 저 지경인데 왜 가만있냐고 나더러 뭐라 한다. 그때마다 나는 언제나 둘이서 알아서 하라,였다. 둘이서 타협하고 협상하라고 나는 말했다. 그걸 왜 3자인 내가 끼어드느냐,라고 하면 형님은 나한테 오만 신경질을 냈다. 그러든지 말든지 둘이서 해결하라고 했고. 오히려 아이는 한 번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소위 일러 받치지도 않았다. 오직 큰엄마와 결판를 보는 것이다. 여하튼 그랬다.

나는 부모가 권력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밥 먹여주지, 재워주지, 옷 주지, 등등 청소년기에 아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시기에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통제권을 주장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부모가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사실 아이를 맡기도 한다. 아이나 부모나 선택권 없이 만났으니 각각의 인격체로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어가는 것이 부모 자식 아닌가 싶은 거다. 왜 부모 말을 들어야 하고, 왜 부모는 자식에게 강권을 행사해도 되는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부모 인생이 있고, 아이 인생이 있는 것... 그게 딱 중요한 시작점인 것 같다.

요즘 생각이 참 많다. 무엇이 참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태어남과 부모 선택이 아무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고 아이는 부모에 의해 태어났으니, 그 아이가 정서가 안착될 때 까지는 부모가 조금 더 고생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관성을 가지고 말이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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