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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May 23. 2021

왕따

자발적 아웃사이더

왕따


그게 아마 국민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아.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피아노를 배우러(부잣집 아이라는 소리) 다녔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우리 반 친구들에게 나랑 놀지 마라, 그랬대. 말도 하지 말고, 근처도 가지 말라고 그랬다고 누가 와서 일러주더라고. 그러면 그 어린 나이에 조금이라도 슬퍼야 하는데, 나는 아무 느낌이 없더라고. 아, 그래? 그럼 너도 나한테 말 걸지 마, 그랬거든.


자세히는 기억 안 나지만 근 서너 달은 그렇게 지냈는 것 같아. 정말 나랑 말하고 지내는 아이는 예닐곱 명 된 것 같고. 다들 나머지는 내 옆에서 겉돌기만 하더라고. 근데 웃기는 것은 내가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안달이 나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어. 오히려 친구들이 와서 쭈빗쭈빗 말 걸면


"ㅇㅇ가 나랑 말하지 말라 했다며, 그러니 나한테 말 시키지 마."


그랬다. 내가 안달하며 같이 놀자, 뭐 그래야 하는데 그런 행동들을 안 하니, 나랑 놀지 마라 한 아이가 더 심리적으로 불안했나 보더라고. 그 아이 엄마가 학교에 왔어. 담임이 나를 부르더니 그 아이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역시 가물하나... 기가 좀 찼던 기억은 있어.


여하튼 석 달 동안의 왕따 소동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고, 그러는 동안 남자아이들과 축구하고 오징어 꽝 하며 열심히 놀았던 것 같아.

그래서 내 안에는 그 아이의 돌연 행동이 전혀 상처도 안 되었고. 오히려 집에 갈 때(집 방향이 같았어)같이 가자며 나한테 이야기하지 않아서 정말 좋았고. 등교 때도 우리 집 앞에서 나 기다리지 않아서 정말 좋았던 기억이야. 아마 그 친구 여학생들 사이에 짱 먹고 싶었는데 내가 걸림돌이었을까.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입학했는데 그 아이 나랑 학교가 같더라고. 중학교 각각 다른 학교로 갈렸다가 고등학교 때 다시 붙은 거지. 나는 기억도 없는 아이더라고. 심지어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아이가 나랑 국 3 때 한 반이었다고 해서 한참 생각했더니 그 아이더라고. 나에게는 추억도 기억도 없는 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내가 오래 각인되었던 것 같아.


사람의 기질은 그런가 봐. 그 어릴 적 기질이 그대로 있어서 어른 되어서도 그런 것 같아. 일이 아닌 개인적 관계로 누가 나 디스 하면 그게 하나도 안 아파. 늘 아픈 것은 내가 사람에게 물음표 달면서 내가 관계 청산을 하자고 마음먹을 때 아프지. 남이 나를 디스하고 왕따 하려는 시도는 왜 그리 덤덤한지. 그냥 곰, 인가 봐. 아니면 어쩌면 결핍인데 내가 애써 뛰어넘거나.


왜 갑자기 그 아이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네. 아마 피드에서 왕따 글을 봐서 그런가. 요즘의 내 일상을 돌아봐서 그런가. 자발적 아웃사이더, 나는 그거 좀 즐기는 것 같아.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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