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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May 29. 2021

직과 업의 차이

북토크와 청년 챙기기를 업으로

1.

박상미 교수님 강연을 북토크를 통하여 들었는데 그동안 해 온 핑퐁형 토크와 다르게 세바시 같은 강연형이 같이 들어간 토크라 느낌이 조금 더 새롭더라. 내가 진행을 보는 것도 아니라서 딱 집중해서 들었는데, 그날 들은 이야기 중에서 나를 가장 움직인 것은 직. 업.이라는 것이었다. 직과 업이 다르다는 말. 그거 묘하게 위로되었다. 직은 돈 버는 일이고, 업은 그 번 돈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는 것이다는 것. 온 우주를 를 다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그동안 그 업, 에 목메어서 직. 을 소홀히 했구나, 싶더라고. 직을 버티고 하고 있어야 업도 할 수 있다는 것.


새삼 강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 강의하는 사람이 2030 때 꿈이었다. 사내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지만 그게 양에 안 찼다. 그러다 40대에 정말 원하던 기업체 교육강사와 대중 강의를 하는 일이 내 ‘직’이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시장에서 제법 인정받았다. 일정을 내가 선택할 수도 있었고, 강사료도 내가 주장할 수도 있었고, 하기 싫은 주제나 가고 싶지 않은 곳은 안 간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미친 듯이 하고 나니 ‘했던 말 또 하는 그 반복 구조’가 미친 듯이 싫은 거다. 맨날 내가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그 구조가 나를 번 아웃하게 했다. 그런 반복이 시리즈로 연간 교육으로 돌아가는 업체에도 별반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하여 어느 순간 오는 강의를 다 안 받았고, 강의 요청 오는 업체가 무서웠다. 나를 앵무새 만드는구나, 하는.


그래서 한동안 욕도 많이 받았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소리에 의하면 “배가 불렀다”, “키웠더니 쌩깐다” 등등. 그런 소리들을 들으면서도 애써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았고, 애써 변명하지도 않았다.


2.

직은 다시 내가 만들고 있다. 강사로, 컨설턴트로, 글쟁이로, 장사꾼으로, 뭐든 연결되어서 돈은 벌 것 같다. 재수 없다 할 수 있겠으나, 내가 마음먹어서 못 했던 것은 없었다. 진짜로 품지 않아서 피골이 상접되는 것이지, 해서 피골이 상접되지는 않았다. 마음먹고 움직이고 있으니 뭐든 되겠지 하고 있다.


업은 그러면? 두 가지 평생 할 것이다.


하나는 책 관련 기획. 북 토크 기획은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는 계속할 것이다. 책만큼 나를 설레게 하는 도구는 없었다. 내 삶을 그나마 버티고 지탱하게 하는 힘의 8할은 책이었다. 책이라도 읽고 사니 사람 구실하고 있다는 생각이고, 책에 대한 빚진 것을 북토크 기획하여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것은 계속하려고 한다. 어제 온 북토크 후기 중에서 “저자와 독자를 연결해 주는 힘” 이런 문장이 있었다. 와, 되게 감동되더라. 독자가 못 느끼는 지점을 챙겨주는 역할을 진행자가 한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여하튼 북토크를 통하여 각각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 진부하지만 맞다. 책만큼 재미있는 도구를 나는 아직 찾지 못해서 여전히 책 안에서 웃고, 웃는다. 내 직을 통해서 업을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책에 대한 판은 계속 벌릴 것이다, 는 확실하다. 책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청년 챙기기이다. 내 직으로 보여지는 것이든 일이 아닌 외부의 영역으로 보이는 것이든 내 괄호 안에 청년이 누군가 들어오면 온 마음을 담아서 환대할 것이다. 물질적 능력이 되면 그 물질을 쏟을 것이고, 그게 안 되면 또 마음을 담을 것이다. 책이 내 삶의 거름이 되었다면 내 삶에 드문드문 받은 어른들의 환대는 내 삶의 버팀목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주변 어른들 사랑을 많이 받았다. 어릴 적 선생님이 준 사랑도 넘쳐서 나이가 오십이 넘은 지금에도 “우리 향수끼, 향수끼”라고 하신다. 결혼하여 시부모에게도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언제나 내가 최고의 며느리라 하셨고, 아이 낳은 날은 장작불 가마솥으로 호박즙을 만들어 오셨다. 그 한 여름에 몇 시간을 장작불 조절하면서 그 즙을 만들어 오셨고, 가족 모임에 주방에서 일하면 나 좋아하는 것은 꼭 한 접시 떼다 남겨두셨다. 친정에서는 엄마하고는 앙숙이었으나 그런 보상, 시댁에서 없는 살림이었으나 사랑은 받았다.


돌아다보면 내가 살면서 사람들에게 받은 환대는 넘치고 넘친다. 그 환대들을 나는 언제나 내 후배들, 아래로 내리는 것으로 갚으려고 했다. 내가 받았으니 위로 되갚으려고 하지 말고, 아래로 사랑이 필요한 후배들이나 내 괄호 안으로 들어온 청년들에게 쏟는 것, 그것은 업으로 계속할 예정이다. 그동안 이런 행위들을 조금조금 하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상처 받기도 했으나 그것도 지나고 나니 뭐 괜찮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마음으로 환대했던 청년들 다 잘 지내고 있다. 그 인과가 내 덕이겠냐마는 여하튼 잘 지낸다는 것은 축복이잖아. 사람을 찐으로 환대하는 것, 그게 청년에게만 통하는 것은 아니다마는 2030 때 환대는 평생 그 사람을 버티고, 뛰어넘게 한다는 것은 맞다. 나는 그거 믿는다.


3.

북 토크를 들으면서 내가 또 얻은 것이 더 많으니 이런 감사할 일이 어디 있겠나. 내가 ‘북토크를 기획하는 이유’라는 글을 며칠 전에 썼는데 그거 2편을 다시 써야겠다. 1편이 개괄적인 글이었다면 2편은 마음의 소리에 더 집중해 보려고 한다.


주말 아침 피곤에 쩔어서... 이제 일어나 이런 긴 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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