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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나무 꽃이 질 무렵

부산항, 피어난 꽃과 숨죽인 자들

by 나바드

이 이야기는 철저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이다. 1910년대 개항기의 부산항, 낯선 서양식 복장이 뒤섞이고, 일본의 통치가 본격적으로 조선을 짓누르던 시기. 그 속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운 이름 없는 의병들의 이야기다.


부산항이 들썩인다.


배들이 정박하고, 서양식 옷을 입은 상인들이 부산 바닥을 거닌다. 장사꾼들은 짐을 나르고, 갓을 쓴 양반들은 그 낯선 풍경을 조용히 지켜본다. 초라한 옷차림의 노동자들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쉴 틈 없이 움직인다. 그리고, 저들 사이에 섞인 자들이 있다. 이름 없는 자들. 낮에는 농부, 상인, 하인, 포목점 주인이지만, 밤이 되면 어둠 속에서 조국을 위해 칼을 쥐는 자들.


부산항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오얏꽃 나무가 바람에흔들린다. 꽃잎이 흩날리는 가운데, 검은 두건을 쓴 사내가 항구 근처의 골목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그의 뒤를 따라가던 또 다른 인영이 속삭인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제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손끝이 주먹을 말아 쥔다. 배 안에는 무기가,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는 들끓는 분노가 있다. 개항한 부산항에서, 일본의 군화 아래 짓밟힌 땅에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그리고, 그 바람은 피어나는 오얏꽃과 함께 폭풍이 될 것이다.


"오늘 밤, 우리가 시작한다."


그들의 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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