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가르는 칼날
거북선 깃발이 펄럭이는 밤, 어둠 속에서 의병들의 발걸음이 조용히 움직였다. 부산 남쪽의 한 외딴 마을, 일본군이 점령한 작은 수비대가 있었다. 그곳에는 빼앗긴 식량과 군수품이 가득 쌓여 있었고, 의병들은 이를 되찾기 위해 모였다.
“우리는 바람이요, 그림자다.”
장혁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손에는 예리한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옆에 서 있던 김명규도 고개를 끄덕였다.
“거북선이 바다를 가르던 그때처럼, 우리는 이 밤을 가를 것이다.”
신호가 떨어졌다.
의병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활을 당기고, 검을 뽑아 들었다. 먼저 나선 이는 박차정이었다. 그녀는 일본군 감시병이 서 있는 망루로 조용히 기어올랐다. 숨소리를 죽이고, 단숨에 적의 목을 찔렀다. 그의 몸이 힘없이 쓰러지자, 의병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점으로 파고들었다.
총성이 울렸다. 일본군이 상황을 감지하고 반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의병들은 번개처럼 움직이며 창고를 급습했고, 식량 자루를 챙겼다. 김갑이 외쳤다.
“모두 철수하라!”
마을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적들이 퇴로를 차단하려 했지만, 이미 의병들은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후세 다쓰지가 마지막으로 포탄 하나를 던졌다. 일본군 기지가 폭음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
“거북선 의병, 철수한다!”
의병들은 빠르게 산길로 사라졌다. 불타는 일본군 기지를 뒤로하고, 거북선 깃발이 어둠 속에서 사라졌다.
이 밤, 조선의 심장은 또 한 번 뛰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 및 인물 각주
1. 박차정 (1910년~1944년) - 의열단의 여성 독립운동가로, 일본군의 주요 시설을 타격하는 작전에 적극 가담했다.
2. 부산·경남 남부 의병 활동 - 1900년대 초반, 부산과 경남 남쪽 지역에서 의병들이 일본군 군수품을 탈취하는 작전을 벌이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3. 후세 다쓰지 (1879년~1953년) - 일본인 인권 변호사로, 조선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의병들의 활동을 은밀히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