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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나무 꽃이 질 무렵

바람을 가르는 검은 그림자

by 나바드

부산항에는 바닷바람이 불고 있었다. 검푸른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러나 이곳, 시장 골목의 어두운 그늘 아래에는 더욱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바람은 다름 아닌, 의병들이 움직이는 기척이었다.


“이 길로 가면 일본 순사들이 자주 순찰을 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박차정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폭탄이 쥐어져 있었다.


“군수품 창고를 습격하는 작전은 변함없습니다.” 김명규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일본군이 우리가 움직일 것을 예측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순간, 장혁이 나섰다. 그는 의병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검을 쥐었던 자였다. 그의 눈빛은 밤하늘처럼 깊었다.


“일본군이 예측하든 말든, 우린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병이란 농부가 밭을 갈 듯, 장수가 검을 휘두르듯,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이 순간, 부산항 저편에서 신호탄이 치솟았다. 붉은 불빛이 밤하늘을 가르며 타올랐다. 그 순간, 모두가 무기를 움켜쥐었다.


“때가 왔습니다.”


의병들이 그림자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칼날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이들은 하나였다. 농부이던 자도, 장사꾼이던 자도, 과거의 신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모두 조국을 위해 싸우는 이름 없는 전사들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의병들이 그 바람을 타고 달렸다. 일본군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불꽃이 타오를 것이었다.




역사적 사실 및 인물 각주


1. 박차정 (1910년~1944년) - 의열단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남편 김원봉과 함께 독립운동을 펼쳤다. 폭탄 투척 및 군수품 습격 작전에 적극 가담했다.


2. 김명규 (1893년~1977년) - 부산 동래지역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로, 의열단의 자금 조달 및 무장 투쟁에 기여했다.


3. 부산항 군수품 창고 습격 사건 - 의열단과 독립운동 단체들이 일본군의 군수품 창고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는 작전을 펼쳤다. 이는 독립군의 무장 강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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