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의 창고
최근 국제 정세 속에서 주한미군의 존재 목적과 전략적 의미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목적이 있다.
많은 이들은 주한미군을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키는 방어선”으로 이해한다. 물론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주한미군은 한반도만이 아닌 동아시아 전역의 안보 체계에 편입된 전략 자산이다. 그 핵심 목적은 단지 북측이 아니라, 중국·러시아·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확산을 억제하는 데 있다. 이는 곧 자유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최전선의 방어막으로서의 기능을 의미한다. 즉, 주한미군은 단순한 '주둔군'이 아니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기지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1기 당시, 미국은 한국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요구했다. 연간 국방예산 약 50~60조 원 중, 당시 한국이 부담하던 주한미군 주둔 비용은 약 1.5조 원. 트럼프는 이를 약 13조 원 수준으로 증액하자고 요구했고, 협상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의회는 이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한미군의 존재는 단순한 '경제적 부담'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략적 가치가 더 컸고, 결국 한미 양국은 일부 조정 수준에서 협상을 마무리했다.
2024년의 국제 정세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대만’이라는 새로운 전략적 변수는 그 무게가 크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며 군사적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 방어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며, 실질적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핵심 기지”라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정체성은 흔들릴 수 있다. 만약 미국이 군사적 대응의 중심을 대만으로 옮기려 한다면, 주한미군 병력의 일부 혹은 전면 재배치 논의도 가능해진다. 이제는 미 의회조차 “주한미군을 대만으로 재배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전략”이라고 논의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단순한 방위비 협상이 아닌, 군사 전략의 본질이 논의되는 상황인 셈이다.
방위비 분담 요구는 다시 등장할 수 있다.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한국이 제공하는 전략적 기반시설, 인프라, 지역 안정 기여 등을 정량적·정성적 지표로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호소가 아닌, “주한미군이 없다면 동북아 안보 지형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국제 안보 차원의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전작권 환수 이후의 실질적 작전 능력 확보와 기술기반 국방력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과거 주한미군 철수는 방위비 협상용 ‘카드’였을 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지 카드가 아닌 시나리오로 떠오르고 있다. ‘대만’이라는 예외적 변수와 미국 내부 전략 전환 논의는 주한미군의 운명이 더 이상 한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동맹은 선택이지만, 동맹 이후를 상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국가전략이 시작된다.
만약 ‘우리는 언제까지 동맹에만 기대어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면,
국방이란 결국 ‘신뢰’와 ‘자립’ 사이의 균형을 묻는 문제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