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넘는 자들
밤이 깊었다. 가야산 자락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싸늘하게 의병들의 옷깃을 스쳤다. 보급로 습격 이후, 일본군이 대대적인 추격에 나섰다. 남쪽의 모든 길목이 봉쇄되었고, 의병들은 이제 더 높은 산을 넘어야만 했다.
“이 산을 넘으면, 서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장혁이 조용히 말했다. 그의 눈은 어둠을 꿰뚫고 있었다. 김명규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놈들이 우리보다 빠르다면?”
“그럴 리 없다.”
박차정이 손에 쥔 나뭇가지를 꺾었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우리는 산을 알고, 그들은 길만 안다.”
이 말에 의병들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길이 아니라 숲을 지나고, 계곡을 건너고, 바위 틈을 타고 움직였다. 일본군이 생각할 수 없는 길을 개척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그때, 멀리서 작은 불빛이 보였다. 일본군의 횃불이었다.
“시간이 없다.”
김갑이 짧게 외쳤다.
“이쪽으로 가면 될까?” 한 의병이 물었다.
“아니다. 우리가 일본군을 따돌리는 동안, 다른 팀이 북쪽에서 교란 작전을 벌인다.”
장혁이 말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거북선 깃발을 펼쳤다. 그 깃발은 이제 그들의 신호이자, 상징이었다.
“우리의 길은 우리가 만든다.”
박차정이 먼저 나섰다. 그녀의 뒤를 따라 하나둘씩 의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저 높은 곳에 있는 하늘의 별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길을 남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의병들은 산을 넘어갔다. 일본군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먼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 및 인물 각주
1. 가야산과 의병들의 은신처 - 가야산은 실제로 의병들의 은신처이자 작전 수행지로 활용되었으며, 일본군의 추격을 따돌리는 전략적 거점이었다.
2. 박차정 (1910년~1944년) - 의열단의 주요 여성 독립운동가로, 치밀한 작전 수행과 현장 지휘를 담당하며 독립군 전술을 발전시켰다.
3. 산악 게릴라전술 - 조선 의병들은 산악 지형을 활용하여 일본군의 동선을 방해하고, 예상치 못한 경로로 이동하며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