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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던트 북스

습작의 창고

by 나바드
Daunt Books Marylebone

런던에서 가장 서점다운 서점, 던트 북스

Daunt Books Marylebone

런던에서 가장 자주 들렀던 상점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서점"이라고 말하겠다.
그리고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소를 꼽자면,
노팅힐의 작은 서점, 그곳이었다.
(※ 이전 글을 읽는다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서점다운 서점’은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던트 북스(Daunt Books)'라고 말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사람 간 거리두기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사랑에 빠질까 봐 남녀 간의 거리를 두라는 이야기일까?
내가 상상한 멋진 할머니의 그대로의 모습

런던 메릴번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많은 이들에게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 불린다.
관광객들 사이에선 ‘에코백 맛집’으로도 유명한 이곳. 그러나 나에게 던트 북스는 그런 단순한 기념품 이상의 의미다. 손때 묻은 오래된 나무 서가, 계단을 따라 나뉜 섹션,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과 종이 냄새가 아날로그 감성을 촘촘히 채워 넣는다. 그 감성 하나만으로도 이 서점은 오래 기억될 곳이다. 서점 한켠에 한국 관련 서적 코너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북한이나 전후 복원 과정에 대한 책들이었다. 내겐 아쉬움이 컸다. 지금 한국에는 세계 문학 시장에 내놔도 손색없는 훌륭한 작가와 작품이 가득한데, 아직도 외국의 시선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한국은 더 이상 회색빛 전쟁 후 풍경의 나라가 아닌데 말이다.

두유노코리아?

런던 지하철은 1863년에 개통됐다. 그 시기 한국은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고, 고종이 막 즉위하던 때.

런던의 지하에는 이미 철도망이 깔려 있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시설은 낡고 느리다.
인터넷 연결도 느리고, 와이파이 역시 불안정하다.
그래서일까? 런던 지하철에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 종이책을 펼쳐든 손, 스도쿠를 푸는 눈,
자기만의 시간을 음미하며 지하철을 타는 이들의 모습은 내게 작은 낭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런던에선 노팅힐이, 해리포터가, 이토록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한국은 종종 "IT 강국"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실상은 전국에 인터넷 케이블이 빽빽이 깔린 나라에 가깝다. 어딜 가도 인터넷이 빛처럼 빠르게 터지니 우리의 고개는 항상 아래로, 손에 쥔 작은 액정 속을 향해 숙여져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조차, 그 작은 액정 속에서 여러분의 시간을 잡아먹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만큼은,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대중교통에서 책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

잠깐의 활자, 잠깐의 상상, 잠깐의 나만의 시간.
그게 우리가 잊고 있던 낭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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