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의 창고
나는 염라 앞에 앉았다
나는 죽었다.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진짜 고통의 시작.
숨이 멎었을 뿐, 삶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염라대왕 앞에 앉았다.
염라는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내가 왜 왔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그저 무거운 침묵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목례를 했다.
죽은 자의 마지막 예법으로.
그 앞에서, 나는 내 죄를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묻는다.
나는 도대체 어떤 죄목으로,
이 49일의 심문을 지나야 하는가.
제1주, 살생의 죄
살인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몸 안의 ‘나’를 얼마나 죽였던가.
내 하루하루는 자해에 가까운 삶이었다.
나를 증오했고,
나를 학대했고,
나를 수십 번 내쫓았다.
그것도 살아 있는 채로.
나는 나를 죽였다.
매일, 아주 천천히.
제2주, 도둑질의 죄
남의 물건을 훔친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시간을 훔쳤다.
내게 진심을 건넨 사람들의 마음을,
미래를 약속했던 날들을,
자신을 다해 사랑한 누군가의 따뜻한 손을
의심과 방황으로 모두 훔쳐내고
버렸다.
내가 가진 것만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남이 내게 걸었던 믿음까지 훔쳐갔다.
제3주, 사음의 죄
정신이 병들었을 때,
나는 사랑을 가장 쉽게 오염시켰다.
진심이 아닌 관심을 원했고,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밀쳐냈다.
관계를 이용했고,
사랑을 욕망의 포장지로 썼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는
결국 사랑을 모욕하는 방식으로 번졌다.
제4주, 망어의 죄
나는 많이도 거짓말을 했다.
특히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견딜 수 있다고,
이건 지나갈 거라고.
거짓말로 나를 속이다 보니
남도 속였다.
나는 늘 괜찮은 척했다.
살고 싶은 척했다.
그래서 더 아무도 몰랐다.
내가 죽고 싶었다는 것을.
제5주, 악구의 죄
말은 칼이었고, 나는 그 칼을 많이도 휘둘렀다.
화를 참지 못하고 내뱉은 말,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저주,
남들의 따뜻한 말마저 찢어버리는 냉소.
그 모든 말은 되돌릴 수 없는 상처가 되었고
침묵보다 더 잔혹했다.
제6주, 기어의 죄
나는 늘 스스로를 과대평가했고,
또 한없이 깎아내렸다.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이름만 남기고 떠도는 거울처럼
세상을 기만했고,
진실한 나를 외면했다.
세상이 나를 모른다고 탓했지만,
정작 나는 나를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제7주, 탐진치의 죄
탐욕은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사랑을 원했고,
죽음까지도 애정으로 포장하려 했다.
나는 분노했고,
세상이 내게만 불공평하다고 믿었다.
무지했고,
모든 아픔을 남 탓으로 돌렸다.
결국 그것이 가장 깊은 죄였다.
염라는 한참을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대는 스스로를 파괴한 죄로 지옥을 거닐 것이고,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죄로 극락에도 들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 있을 때 이미
매일 지옥을 통과했고,
매일 다시 살아났으며,
그 끝에 기다리는 건 해탈이 아니라
또 다른 고통이었다는 것을.
49일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경계 위에 앉아 있을 것이다.
죽지도, 구원받지도 못한 채로.
아무도 없는 무間地獄(무간지옥) 속,
나는 끝없이 나의 죄를 되새길 것이다.
아무도 묻지 않아도,
나는 끝없이 답할 것이다.
이것이 내 마지막 고해이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심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