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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난 적이 없다. 다만, 세상에 버려졌다

습작의 창고

by 나바드

나는 태어난 적이 없다. 다만, 세상에 버려졌다.


나는 다섯 살이었다.

의식만 남은 채 침대에 눕혀 있었고,

숨을 쉬고 있었으나,

숨은 내 것이 아니었다.


천장은 하얗고,

벽도 하얗고,

나는 색을 알기도 전에

색을 빼앗겼다.


삑, 삑, 삑

기계는 내 생명을 세고 있었다.

그 소리는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죽지 못한 시간의 형벌 같았다.


나는 손도, 다리도, 입도 아니었다.

단지 깜빡이는 눈동자 하나였다.

그것으로 이 세상에

붙어 있었다.


살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죽고 싶었던 기억도 없다.

다만, 사는 이유가 사라졌을 뿐.


항암제는 몸을 부수고,

스테로이드는 살을 찢고,

면역억제제는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몸은 망가졌고,

정신은 그 잔해 속에 갇혀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 고통은 병명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불안은 병이 아니고,

우울은 나약함이고,

불면은 의지 부족이란다.

나는 모든 것을 견뎠지만

아무도 그것을 ‘살았다’고 불러주지 않았다.


나는 별처럼 태어나지 않았다.

별은 떠오르기라도 하지만,

나는 뜨지 않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출처 없는 고통 속에 태어났다.


삶은 내게서 시작된 적이 없다.

그저 세상의 누락으로,

통계의 오류로,

의사의 실수로,

신의 방심으로,

나는 이곳에 버려졌다.


의사들은 희망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약을 줬고,

나는 죽지 않을 만큼만 살았다.

살아 있다는 건

고통이 종료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그래도 너는 살아 있지 않느냐고.

그 말은 차라리

‘왜 아직 죽지 않았냐’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누구의 자랑이 된 적도 없고,

누구의 위로가 된 적도 없으며,

누구의 걱정 속에도 머물지 않았다.

나는 그저 버티는 그림자였고,

살아 있는 결석자였다.


세상이 잔인한 건,

죽음보다 생존을 더 쉽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죽지 못한 채 깨어있다.

누구도 부르지 않은 이름으로,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을 고통으로.


태어난 적 없다.

사라질 자격조차

처음부터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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