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만을 위한 죽음은 없다.

습작의 창고

by 나바드

나만을 위한 죽음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위한 생인가


나는 나를 죽이고 싶었다.

정확히는, 사라지고 싶었다.

조용히, 소리 없이,

누군가의 기억에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그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하지만 삶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죽고 싶다는 마음마저도

이기적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나 하나를 위해 결정할 수 없었다.


죽음을 택하는 나를

누군가는 비난할 것이다.

누군가는 슬퍼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평생의 죄책감을 품은 채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너무나 끔찍했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사라지는 일은

또 다른 누군가를 망가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삶은 처음부터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끝내 사라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내가 아팠던 시간은 너무 길었다.

몸은 자가면역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공격했고,

나는 다섯 살부터 병원이라는 감옥에서

계절을 잃어버린 채 살아야 했다.

약은 나를 살리는 게 아니라,

죽지 못하게 하는 도구였다.


그렇게 버텼다.

그렇게 견뎠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으면 안 되니까.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은,

때때로 고통 그 자체보다 더 아프다.


불안은 병이 아니고,

우울은 의지 부족이라며

사회는 나를 ‘망가진 사람’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망가진 적이 없다.

나는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그저 우연히, 실수처럼 태어나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숨을 쉬는

유예된 사망선고일뿐이었다.


그래서 생각한다.

정말, 나만을 위해 죽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사라지면

어머니가 울 것이다.

친구가 미안해할 것이다.

연락을 못 했던 지인이

‘내가 조금만 더 다가갔다면’

이라며 밤을 지새울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죽는 순간까지조차,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게, 삶인가.


나를 위해 살 수 없는 생.

죽는 것조차 나만의 선택이 될 수 없는 인생.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지고, 더 옅어지고, 더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을 삼키며

다시 약을 삼킨다.


이것은 나를 위한 생이 아니다.

남겨질 이들을 위한 죽음의 연기다.

나는 오늘도 죽지 않기로 결정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울까 봐.


어쩌면,

나는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야 아무도 울지 않았을 테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태어난 적이 없다. 다만, 세상에 버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