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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팅힐 어느 오후, 낭만을 주웠다.

습작의 창고

by 나바드
노팅힐 서점

런던의 거리를 걷다 보면, 낯선 골목에서 문득 영화 속 장면이 현실처럼 스며드는 순간이 있다. 유독 마음을 사로잡는 곳, ‘노팅힐 북숍(Notting Hill Bookshop)’은 내게 그런 공간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노팅힐이라는 영화를 좋아했다. 그곳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화려한 로맨스’가 아닌, 일상 속에서 스며드는 낭만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런던에 있을 때, 나는 꼭 그 촬영지를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책장 가득 꽂힌 낡은 책들, 나무 향이 묻어나는 서점의 공기, 벽에 핀처럼 꽂혀있는 메모지들. 대충 찢어낸 종이에 아무렇게나 휘갈긴 글씨들은 타지에서 누군가가 남긴 흔적이었다. 한 장 한 장 읽어보았다.

노팅힐 서점 어느 한 구석


“런던에서 꿈을 찾고 갑니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서 사랑을 만나기를.”

“혼자 하는 첫 해외여행, 그리고 여기에서 한 페이지를 남깁니다.”


대부분은 여행자들이 남긴 것이었다. 아마도 그들에겐 이곳이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무언가를 남기고 가고 싶은 장소였을 것이다.


그 메모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낭만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멋진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낭만이란, 이곳처럼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것이다. 떠나는 자가, 남은 자가, 그리고 언젠가 올 누군가가 서로의 흔적을 발견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것.


나는 조용히 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 장의 종이에 글을 적었다.


“어느 낯선 여행자가 이곳을 지나갑니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을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이 글을 읽어줄까요?

어느 쪽이든, 이 순간은 그대로 남아 있기를.”


벽 한쪽에 살짝 찢긴 종이를 붙이고, 나는 다시 길을 걸었다.

노팅힐 서점

낭만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때론, 오래된 서점의 구석진 메모지 한 장에서 시작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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