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차 자가면역질환자의 생활기
내 삶의 마지막 선택, 장기기증
7년 전, 내 인생의 방향을 돌려놓을 만한 사건이 있었다. 그날이 단지 해프닝으로 지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어딘가에 숨어버렸을 것이고,
지금처럼 글을 쓰고 있는 이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내 안에서는 꽤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두 가지 질문이 남아 있다.
첫 번째는,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타인의 기대나 의무감이 아닌,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과연 이 삶을 붙잡을 수 있는 어떤 명분을 말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내가 죽어야 할 이유는 있는가?’이다.
죽음을 선택한다고 가정했을 때, 남겨질 가족과 친구들에게 남길 상처와 그로 인해 이어질 수많은 연쇄적인 불행을 떠올리면 죽음조차 쉽사리 다가갈 수없는 문턱이 된다. 무엇보다 나는, 아직 죽고 싶다는 확신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해졌다. 내 삶의 시작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지만, 죽음에 대해 어떤 가치를 남길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죽음의 의미란 무엇일까. 그 질문은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렀고,
나는 언젠가 그 답을 조용히 실천했다.
2024년 11월, 재발로 대학병원에 입원했던 어느 날.
항암 치료를 앞두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채
온몸에 링거와 장치를 연결하기 직전,
나는 병동을 나섰다.
병원 내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직원들은 내가 환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조심스레 다가온 직원이 물었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나는 차분히 대답했다.
“장기기증 신청을 하러 왔습니다.”
잠시 후, 장기기증 전문 코디네이터가 내게 물었다.
“즉흥적인 결정은 아니신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7년을 고민했습니다.
오늘이 단지, 그 고민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날일 뿐입니다.” 이어지는 설명을 듣던 중, 나는 조용히 말을 끊었다. “모두 알고 왔습니다. 장기, 안구, 조직 전부 기증하겠습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나는 주저 없이 신청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병동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평소와 다름없는 기분이었다.
며칠 후,
퇴원한 내게 한 통의 우편물이 도착했다.
장기기증 등록증과 감사 편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그걸 본 부모님이 나를 불렀다.
“이걸, 부모랑 상의도 없이 할 수 있냐?”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지금 당장 죽겠다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자식의 장례를 치르는 게 옳은지
자식이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게 옳은지
저는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부모님께선 늘 ‘베풀면서 살아라’고 하셨죠.
이건, 제가 그 말씀을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혼내지 마시고, 칭찬해 주세요.”
한동안의 침묵 끝에,
부모님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셨고,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무탈하게 지나갔다.
나는 여전히, 내가 꼭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죽어야 할 이유를 찾아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내 죽음이 누군가의 삶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사라진 후에도,
내 몸의 일부가 누군가의 심장으로,
누군가의 눈으로, 또 다른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이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도 분명한 대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