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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vee Aug 08. 2021

조거팬츠 말고 원피스

잃어버린 나의 취향을 찾아서


마흔, 진짜 내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 여정을 함께 나누며 서로의 삶을 응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Meaningful Life'를 살아갈 수 있기를!


나는 원피스를 좋아해

나는 조거 팬츠를 입고, 평양냉면을 먹는다. 정작 나는 원피스를 입고, 삼계탕 먹는 것을 좋아한다. 원피스를 좋아하는 나는 왜 조거 팬츠에 운동화를 신는 것일까? 삼계탕을 좋아하는 나는 왜 평양냉면을 먹는 것일까? 


이러한 변화는 결혼 이후부터 생겨났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선호는 존중을 받지 못했다. 원피스를 촌스럽다며 스트릿 패션의 의상을 권했고, 내가 삼계탕을 먹으러 가면 자신은 삼계탕이 싫다며 아예 밥을 먹지 않는 방법으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차라리 그가 좋아하는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비록 한 젓가락만 먹을 수 있을지라도...(물론 지금은 잘 먹는다)


옷의 취향과 식성은 물론이고, 내가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과 티브이 프로그램까지 사사건건 부딪쳤다. 집에서 고기는 구울 수 없었고, 내 소지품은 거실에 내놓을 수 없었다. 심지어 침대 뒤에 숨겨둔 소지품까지 모두 집 밖으로 꺼내놓아야 했다. 이 집에서는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혼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그것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양보하며 절충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나에게 자신의 취향을 내세우는 것만큼 나 또한 내 취향을 강요했을 테니까 상호적인 것이겠지.  그런 마음으로 8년을 살았다. 


이제 내 맘대로 살 거야!

최근 남편과 잠시 떨어져 있으면서, 나에게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내 취향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거실에는 조그마한 전자키보드가 생겼다. 예전 같으면 거실에 내 물건을, 그것도 코드 선이 주렁주렁 달린 물건을 꺼내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니멀리즘을 선호하는 남편은 거실에 아무것도 꺼내놓지 못하게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거실 한가운데 전자키보드가 떡하니 놓여있다. 


심지어 집에서 삼겹살도 구워 먹는다. 남편은 집에서 냄새난다며 고기 굽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늘 몰래 구워 먹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환기를 시켜두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든 내 마음대로 구워 먹는다. 요리를 하다가 연기가 나도 괜찮다. 연기 난다고 짜증 낼 남편이 없으니까. 요리가 끝난 후 쿨하게 서큘레이터를 돌리면 되는 거니까. (아! 서큘레이터도 얼마 전 샀다. 너무나 편한 것)


이렇게 소소한 것들에서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동안 내가 집안에서 많이 억눌려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집인데 내 마음대로 살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자유롭고 행복했다. 물론 남편도 이 시간이 매우 즐거운 듯했다. 목소리가 한껏 업되어 있더라. 왜 아니겠는가. 나만 억눌려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또한 많은 것들을 억누르고 있었겠지. 지금은 내가 없는 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골프 프로그램을 실컷 볼 수 있었을텐니까 얼마나 좋겠는가 � 


우리는 서로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떨어져 보니 서로 이렇게나 홀가분해하고 있다. 그동안 억눌렸던 각자의 취향을 실컷 즐기며 행복해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가 꼭 필요하다고 우기면서도, 같이 사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저 상대가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여라도 내가 그의 취향에 맞춰줄 때는 생색을 엄청 냈다. 혹은 짜증을 내거나.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그렇다 보니 정작 자신의 취향을 어디서도 꺼내놓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떨어져 있는 날이 하루 이틀 지날수록 숨어있던 취향이 하나둘 씩 고개를 든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 잘 있었니? 덕분에 나는 한동안 원피스 입고 전시회도 가고, 공연도 가야겠다. 집에서 피아노도 치고, 연기 나는 음식도 좀 해 먹어야겠다. 오래간만에 내 취향을 즐길 생각을 하니 신난다. 


그러니 여보도 지금 실컷 당신의 취향을 즐기시오! 시간이 얼마 없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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