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가을비는 운치있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가 가을을 더 선명하게 한다. 거실에서 보이는 산은 어제보다 짙게 보이고, 빗물을 머금은 나뭇잎은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이렇게 가을은 비로 인해 깊어간다. 가을의 절정에서 가을을 느끼며 출근길에 나섰다.
월요일,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날씨만큼 어둡다. 비가 와서 일까? 아니면 월요일 때문일까? 표정은 그 사람의 감정을 보여준다. 표정이 어두운 건 감정이 어둡다는 뜻이다. 그만큼 마음속에 기분 나쁜 감정을 품고 있다는 말이다. 월요일에는 기분 나쁜 감정들이 버스와 기차와 전철에 가득하다. 그 감정들이 서로 외면하고 때로는 부닥치면서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진다.
오늘도 비교적 좋은 기분으로 시작했다. 아침 회의 가 두 시간을 넘기기 전까지는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회의 시간이 세 시간 가까이 이르자 기분이 나빠졌다. 처리해야 할 일은 많은데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불평이 꼬리를 물었다. 기분이 가라앉자 목소리도 어두워졌고 표정도 일그러졌다.
길었던 회의가 끝나고 한숨을 돌리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직원들과 점심으로 수제비를 먹고 산책을 하려고 했으나 비 때문에 포기했다. 심호흡을 하며 몸을 움직였으면 기분이 한결 풀어졌을 텐데 아쉬웠다. 찜찜한 표정과 기분으로 오후를 보냈다.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보니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흘러갔다. 퇴근 무렵에는 직원과 소소한 마찰이 생겨 기분이 더 나빠졌다. 그저 그런 기분 속에서 그저 그런 일들만 벌어졌다.
반면 이사님의 표정은 늘 밝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표정에 생기가 넘친다. 표정뿐만 아니다. 말투와 몸짓도 유쾌하다. 그래서 그럴까? 이사님 주위에 기분 좋은 사람들이 많다. 기분을 늘 좋은 수준으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상황들 속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그로 인해 기분 나쁜 감정들이 스며든다. 그럴수록 표정을 밝게 해야겠다. 표정이 밝아지면 기분도 좋아지니까. 기분 좋은 사람은 표정이 살아있다. 생동감이 꿈틀거린다.
퇴근 후 며칠 전 주문한 대봉감을 받았다. 상품이 무척 좋아 흐뭇했다. 그 순간 라디오에서는 베토벤의 비창 2악장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