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어제 대청호에서 진행된 행사를 관람하고 집에 오니 밤 8시였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섰는데 어디에서 낙엽을 태우는지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다. 가을에만 맡을 수 있는 계절 냄새다. 주말에는 1일 1식을 해서 저녁식사를 건너뛸 생각으로 귤과 땅콩, 호두를 먹었다. 귤이 제철인지 상큼하고 달았다. 천천히 귤을 씹으니 제주도의 푸른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몇 년 전 겨울에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올레길을 걸으며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빨리 직장을 구해야 하는 절박함과 막막함 사이에서 제주도 바다를 보면서 희망을 떠올렸다.
밤 9시가 넘어서자 급격하게 허기가 몰려왔다. 배에서 연달아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런 상태로 잠을 잤다가는 배가 고파 새벽에 깰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평소 냉장고에 음식을 쟁겨 두지 않아서 먹을 것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지난달에 사놓은 라면을 끓여 먹었다. 먹고 나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뱃속이 따뜻하니 기분도 좋아졌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원칙 중에 하나가 밥은 배고플 때만 먹는 것이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시간에 맞춰 밥을 먹으면 소화도 안 되고 잠도 푹 자지 못했다. 배가 비워진 상태에서 잠을 자야만 숙면을 취하고 다음날도 개운하다.
늦가을의 정취가 가득한 일요일을 집에서 보냈다. 약수터에 가서 아침 공기를 쐬고 온 것과 저녁 무렵 마트에서 간단하게 장을 본 것을 제외하면 종일 집에 있었다. 음악 명상을 하고 사과를 먹고 낮잠을 자고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냈다. TV를 켜니 한국시리즈 야구경기를 중계해서 오랜만에 야구를 관람했다. 야구를 보면서 현대인들이 스포츠에 빠져드는 것도 결국은 좋은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느꼈다. 불안하고 허전한 사람들에게 야구는 기쁨과 희열, 짜릿함 등의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스포츠다.
어쩌면 좋은 기분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마음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무언가가 아닐까? 밥을 통해 육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듯이 우리는 좋은 기분을 통해 마음의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밥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몸과 마음의 존재인 인간이다. 그렇다며 언제 좋은 기분이 필요할까? 배 고플 때가 밥을 먹어야 할 때인 것처럼 마음에 허기가 몰려올 때는 언제일까? 바로 걱정과 두려움, 불안함, 우울함 등 기분 나쁜 느낌이 들 때다. 그리고 뭔가 새로운 영감과 열정, 창의력, 솔루션이 필요할 때다. 그때가 바로 좋은 기분으로 마음에 에너지를 채워야 할 순간이다.
특히 오늘처럼 월요일이 걱정되는 시간에는 더욱더 좋은 기분이 필요하다. 저녁에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으며 좋은 기분을 채웠다. 감미로운 재즈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