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ATM부스 안에서 30분이나 있었나?

11월 27일

오후 2시쯤 고향집 큰길에 있는 ATM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부스에는 ATM 두 대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예전에는 직원 4명이 일하던 농협지점이었는데, 인구가 줄자 지점은 폐쇄되고 ATM만 남았다. 아버지는 겨울 내내 석유보일러를 돌리려면 현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돈을 인출해 달라고 하셨다. 아버지에게서 통장을 건네받고 큰길까지 걸어가서 ATM 안으로 통장을 밀어 넣었다. 통장정리 버튼을 누르자 통장 종이에 글자가 인쇄되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득 드르득!


잠시 후 인쇄 소리가 끊겼다. 통장을 빼내 금액을 확인한 후 현금을 인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통장이 나오질 않았다. ATM안쪽에서 통장이 걸렸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할지 몰라 통장정리 버튼을 계속 눌러봤지만 허사였다. ATM를 오래 사용해왔지만 오늘처럼 통장이 걸려 난감해지기는 처음이었다. 하는 수 없이 긴급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경비업체 직원이 받았다. 그러더니 옆에 있는 긴급전화기로 농협콜센터에 고장접수를 해야 자신이 출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한참을 통화 대기 중 상태로 기다린 끝에 농협콜센터 직원과 연결돼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최대한 빨리 조치를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경비업체 직원이 도착했는데 농협콜센터 직원이 고장접수를 잘못해 ATM을 열 수 없다며 난감해하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30분간 옥신 간신 한 끝에 간신히 통장을 건네받고 부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아!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다니’ 하늘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그런데 이 일의 징조가 몇 시간 전에 있었다. 한의원에서였다. 토요일 오전이라서 일어나자마자 고향집에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한의원에 갔다. 오늘은 부모님께 보약을 지어드리려고 원장님과 상담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원장님이 아버지 맥을 짚어 보시더니 “아버님이 기운이 너무 없으셔서 이대로 계속되다가는 돌아가실 수도 있으니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몸과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원장님의 말에 모든 에너지가 급격하게 떨어졌고 기분도 빠르게 나빠졌다.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채로 마트와 식당을 오갔다. 심호흡을 하며 평정심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나쁜 기분은 계속되었다.


나쁜 기분이 이어지자 일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ATM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헤어진 후 자동차 세차를 하러 갔더니 세차 기계가 고장이 나서 오늘은 영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매주 방문하는 유기농 매장에서 빵을 사려고 했으나 다 판매돼 발걸음을 돌려야 했고, 집 근처의 마트에서 대봉감을 사려고 했는데 역시 상품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눈을 감고 하루를 돌아보니 아침에 일어나 기분명상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기분명상을 통해 감정의 회복력을 높였더라면 원장님의 말에 덜 휘둘렸을 것이고 오늘 벌어진 일들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좋은 기분을 느낀다면 며칠 내에 행운과 축복이 다가오고, 나쁜 기분을 느낀다면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는 것! 기분의 오묘한 힘이다. 기쁨을 느꼈다면 그 감정이 사라지기 전까지 창의력이 유지된다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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