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쾌청한 가을날이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물을 따라 기분 좋게 출근을 했다. 오늘은 오전 10시부터 간담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지역의 예술가들과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떨리기도 하고 긴장도 되었다. 출근하자마자 간담회가 열리는 세미나실을 청소하고 회의자료를 준비했다. 어느덧 10시가 가까워지자 예술가들이 세미나실로 한두 명씩 들어섰다. 간담회는 순조로웠다. 예술가들은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공유하면서 즐거워했다. 이제 식당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으면 간담회는 끝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기분 좋은 시간이 이어질 것 같은 찰나에 세미나실을 관리하는 후배 직원이 갑자기 들어오더니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선배님! 세미나실을 이렇게 해 놓고 나가시면 어떻게 하세요? 뒷정리를 하고 가셔야죠!”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놀라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일단 예술가들을 식당으로 안내해야 했기에 나는 후배에게 “점심 빨리 먹고 와서 뒷정리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줘. 오후에 여유가 있잖아!”라고 말하고 세미나실을 빠져나왔다.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기분이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불쾌함을 넘어 모욕감이 치밀자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특히 평소에 사이좋게 지냈던 후배가 느닷없이 화를 내니 더욱 그랬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예술가들과 헤어진 후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후배에게 어떻게 앙갚음을 할지가 떠올랐다. 그러자 다시 화가 치밀었다. 심호흡으로 화를 삭이니, 오늘이 바로 기분 좋게 살기로 한 첫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된 기분 좋은 삶을 망칠 수는 없어’라는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기분을 변화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예전 같으면 당장 달려가 후배와 싸웠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후배의 좋은 점들을 떠올렸다. 먼저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건네거나 퇴근할 때 따뜻하게 인사하는 모습,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솔선수범 하는 모습들이 생각났다.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기분은 조금 좋아졌지만 후배를 볼 때마다 벽이 생긴 듯 어색했다. 그러나 적어도 후배를 미워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퇴근해 집에 와서도 후배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다음날 출근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쁜 기분 대신 업무 중 틈틈이 청아한 가을을 즐기며 기분 좋은 순간을 만끽했다.
점심때가 되자 업무를 통해 알게 된 지인이 약속도 없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대표님과의 식사자리에 얼떨결에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런데 메뉴가 내가 좋아하는 버섯찌개였다. 제철 자연산 버섯이 가득 들어간 찌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하고 행복에 젖어있는데 대표님이 갑자기 드라이브를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금강을 끼고 있는 호젓한 마을로 드라이브를 하고 산책을 하는데 투명한 햇살과 깨끗한 공기, 황금들녘이 눈부시게 펼쳐져 기분이 황홀해졌다. 기분이 너무 좋아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후배에게서 받았던 분노와 나쁜 기분이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돌아오는 길에 지인과 내가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반가웠다. 기분 좋은 삶에는 수많은 고비들이 존재한다. 그 고비를 좋은 기분으로 넘길 때 삶은 축복과도 같은 선물은 주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