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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by 경계선

거기는 고도제한도 걸려있고, 기와지붕 아니면 건축허가도 안 나고, 참 골 때리는 동네야. 도대체 개발이라는 걸 할 수가 없지. 게다가 경주는 산업도 없고 인구 유입도 안되고... 참 발전이 없는 동네야.



이런 이야기를 부모님으로부터 들으며 어릴적부터 지금까지도 일 년에 적어도 5번 이상 경주를 왕래하며 살고 있다.

참 발전 없는 동네, 경주. 어린 시절 경주에 대한 나의 인상은 이렇게 고정되었다.

산업화의 동네인 울산에서 나고 자란 나의 입장에서는 경주가 가깝고 친근하지만 별 감흥 없는 동네였다. 경주가 고향이신 부모님은 밥벌이를 위해 울산에 터를 잡으셨다. 어쩌면 울산에 빨려 들어간 인구 중에 경주 사람들도 제법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경주는 그 넓은 경북 안에서도 경남-부산-울산에서 가까운 경북의 남쪽 끝자락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울산에서 남경주까지 고속도로가 개통(울산-포항 고속도로)되어 빠르면 30-40분 만에 경주 대릉원/첨성대 일대까지 닿을 수 있게 되었다.


경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구의 도시이자 목 잘린 불상들이 예사로 뒹구는 남산이 있는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가 마음에 들어오게 된 것은 울산을 떠나서야 가능했다. 대학 때 경주 남산 답사를 위해 하루 종일 경주 남산을 배회했던 적이 있었다. 산 자락에 이끼 쌓인 돌들과 목이 잘려나간 불상과 구불거리는 소나무, 그런 것들을 보며 능선을 탈 때의 그 신비로움을 잊을 수가 없다. 걷기에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크고 작은 불상과 탑은 죄다 국보며 보물이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이런 산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 경주 남산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에 할 말이 많다. 많은 말을 해 놓은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부산에서 만났었다. 아이를 부산에 있는 시댁에 떼어놓고 나온 너는 내게 함께 경주 여행을 했던 그때가 떠오른다고 했다. 도솔 마을(대릉원 근처 식당)에서 먹었던 점심식사도 기억난다고 했다. 함께 경주박물관에서 에밀레종소리를 지는 석양을 등지고 들은 것도 기억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경주에 가자고 했다. 시각은 오후 1시. 네가 다시 돌아갈 시간은 오후 5시. 부산 금정구에서 나는 첨성대로 차를 몰았다. 햇빛은 따뜻했고, 너는 첨성대를 배경으로 돌아앉아 긴 머리칼을 조수석 차창 밖으로 흘려보냈다. 그때의 네 눈에는 평화가 가득했다.


경주는 언제나 여유와 공백의 도시였고, 구시가지인 대릉원과 쪽샘지구로 통하는 돌담길에는 새초롬한 햇빛이 가득했다. 관광지가 아니라 조용히 걸을 수 있는 곳. 나는 경주의 그런 곳을 많이 알고 있다. 나는 경주의 그런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 아주 오래전 외삼촌은 초등학생인 나에게 '나는 경주의 가로등이 몇 개인지 다 안다.'며 내게 허풍을 지어보였다. 그 젊은 날의 삼촌처럼 나도 그렇게 경주에 대해서는 무언가 허풍을 가지고 원래 놀던 동네인듯 떠올리게 된다. 왕릉 꼭대기에서 비료포대 깔고 잔디 썰매를 타던 기억은 여전히 어릴적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고.


길 한가운데에 묻어나는 여러 색의 공간과 추억은 딱 2시간 정도 허락됐다. 경주에서 시간을 보내고 너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이후 몇 해동안 전화통화만 하면 그 추억을 복기하는 내용으로 채우곤 했다.


개발이 되지 않았으니, 이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소설가 김영하가 했던 말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천년 전의 왕들이 이 공간을 지키고 있지 않느냐 말이다. 경주 구시가지는 사람 한 두 사람 겨우 지나갈 좁은 골목이 있다. 좁은 골목에 마주한 집들은 모두 기와를 이고 있는데 주택가 앞 도로변에 작은 상점들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그 나지막한 기와 지붕에 무덤이 볼록 솟아 남산 자락으로 포근히 싸여 있다.




그리고,


얼마전 잡지를 뒤적이다 발견한 장소였다. 경주를 자주 가는 편임에도 새삼 어딘지 궁금했던 이 곳. 알고 보니 나는 항상 곁에 두고도 그냥 지나고 말았던 그 곳. 역시나 장소는 발길이 인도해준다 하여 도착하는 곳이 아니다. 머리로, 눈으로, 오감으로 먼저 인지하고서야 그곳이 내게 '장소'가 될 수 있다. 장률 감독의 영화 <경주>를 보면서도 어떤 장소는 어떻게 기억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 장소 : 경북 경주시 황금동
* 사진, 글 : 나빌레라(navill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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