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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Sep 01. 2017

음악가의 묘지(1):모차르트 앞에서 우리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 중앙 묘지

시퍼런 바람이 창을 흔들고 삐져나오는 한기를 온몸으로 감으며 시곗바늘 움직임만이 방 안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응시할 수 없는 현실은 그대로 벽이 되어 있고, 단단한 마음은 녹일 길이 없었던 시간이 있었다. 모두가 그 시간을 거쳐와야 무언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삶의 한 부분은 분명 그러했다. 누구에게도 위로를 구할 수 없었던 시간에 나는 음악으로부터 제법 많은 몫의 안도와 위로를 받았다. 함께 불안을 노래하고 함께 축배를 들어주었으며 또한 함께 어떤 시간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나는 그리하여 음악에 빚이 많은 사람이다, 그것도 클래식 음악에. 


비엔나를 가게 된다면, 그래서 꼭 들르고 싶었던 곳이 그들의 묘지였다. 비엔나 외곽에 비엔나 전체 인구보다도 많은 숫자가 묻혀 있는 공동묘지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음악가들 뿐만 아니라 여러 정치가, 유명인, 예술가들, 어떤 가문의 가족묘까지 구역별로 나눠져 있던 비엔나 외곽에는 제법 뜨거운 햇빛과 다르게 적막이 흘렀다. 꽃 한 다발 준비하고 싶었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준비할 수 없었던 것은 제법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외곽 중앙공동묘지의 전경


묘지는 누군가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직접적인 흔적이다. 저 세상으로 보내기 아쉬운 사람들에 대해 남은 사람들은 그들을 잊지 않으려 아직도 부여잡고 있다. 그렇지만 음악을 했던 사람들은, 묘지가 아니어도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은 영원을 산다는 뜻이다. 그들의 음악은 과거형이 아니라 언제나 가장 최신으로 연주되고 있고, 나는 때로 그들의 음악에 울었던 적이 있으니 말이다.


모차르트의 무덤(사실은 가묘이다)

요즘도 당신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즐겨 듣는다. 나는 사실 모차르트의 곡을 잘 듣지 않는 편이었는데, 당신 덕분에 피아노 협주곡 21번, 22번은 정말 자주 듣게 된다. 휴일 아침에는 거의 어김없이 당신은 거실에 음악을 튼다. 음악이 가득하도록 트는 당신의 눈빛은 언제나 여유롭다. 어떤 날은 턴테이블에 LP를 물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CD를 고르기도 한다. 그래도 요즘은 대부분 핸드폰의 애플 뮤직으로 바로 골라 airplay로 스피커로 연결하기도 한다. (세상 참 좋다. 집이 "사과(Apple) 농장"이면 더 좋다.^^;;) 어떤 방식이든 당신은 항상 휴일마다 음악을 틀곤 한다. 아침을 먹는 건지, 여유를 먹는 건지, 산발된 머리와 부스스한 얼굴로 휴일 아침에 서로 마주 보고 제법 흡족하게 웃곤 했다. 언젠가부터 당신은 아침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틀기 시작했고, 하도 자주 틀면서부터는 내게 슬쩍 묻기도 했다. "또 틀어도 돼?" 


한 곡을 여러 번 듣는다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당신은 내게 그 음악이 가지는 당신 안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은 없다.

나는 묻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음악은 내밀하다. 

함께 있으나 독립적인 타임라인을 살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지겨움을 느끼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 묘지 앞에서 당신은 제법 오래 진지했다. 

묘지 앞에는 헌화된 꽃들이 시간의 순서대로 말라가고 있었고, 어느 시대를 살다 간 작곡가의 흔적은 고요하고 소박하게 말라 가는 꽃을 바라보는 듯했다. 시간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지만, 예술은 언제나 현재를 산다. 예술은 가장 최신의 뉴스이자 정보이다. 모차르트가 살았던 시대가 중세라고 말하기에는 우리는 그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무덤 주위를 발소리 나지 않게 오래도록 걸었다.



* 장소 : 오스트리아 비엔나 중앙 공동묘지(Zentralfriedhof) 그룹 32A 지역
* 사진, 글 : 나빌레라(navill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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