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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Sep 04. 2017

음악가의 묘지(2):방랑자 슈베르트의 안식처.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 중앙 묘지

** 이 글은 <음악가의 묘지(1):모차르트 앞에서 우리는.>에서 이어집니다.


백건우의 타건은 피아노를 달래서 데리고 가는 겸손하지만 단호한 노련함이 돋보였다. 

누구보다도 부드럽고 여린 꿈결 같은 피아니시모를, 포르테에서는 음을 핀셋으로 뽑아내는 듯한 명징함을,  

슈베르트의 방랑과 자유를, 그리고 고독을 얼마나 고뇌하고 공부했는지 느껴졌다.

마스터의 경지에 있는 나이 든 피아니스트는 커튼콜을 세 번이나 받았다. 

음악 안에서만 희미한 미소를 보이는 그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구도자 같았다. 

백건우의 연주로 나는 슈베르트를 처음 접했다. 레코딩 말고 직접적인 연주로 말이다.

그러고보니 그 연주회 이후 2년이 지나 그의 묘지 앞에 서게 되었다.


나는 슈베르트의 많은 곡들에 제법 오랜기간 집중하고 있었다. 넉넉히 한 3년간은 슈베르트에 머물렀던 것 같다. 한 곡을 하루 종일 들은 적도 있었고, 곡은 다르지만 한달 넘게 출퇴근시간 혹은 여유가 될 때마다 슈베르트를 틀었다. 곡의 제목을 다 외우지 못한채로 나는 그저 들었다. 처음에는 섬세한 곡의 전개와 때로 정직하게 휘몰아치는 그의 폭풍 같은 감성의 전개가 돋보이는 피아노 곡들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언제나 그의 가곡을 듣곤 했는데, 슈베르트만큼 인간의 목소리에 숨겨진 고단함을 잘 이해하는 작곡가가 있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항상 처연한 감성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는 그의 음악에는 연민이 묻어 있었다.

슈베르트의 무덤가에 놓여있는 꽃과 화분 등을 보며 다른 무덤에 있는 비슷한 것들에 비해 더욱 '사랑'의 감성이 느껴지는 것은, 그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성향 때문이라 생각했다. 슈베르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왠지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을 것 같고, 그때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인들이 많을 것이라 상상해보곤 했다. 그래서 아직도 슈베르트의 '팬심'은 두텁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나는 슈베르트의 즉흥곡들을 특히나 좋아하는데, 그가 없었다면 어떤 시간에서는 지금 돌아보았을 때 제법 위험한 생각들에 많이 흔들리기도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의 음악을 들을 때면 그가 가졌던 생애 중에 위험한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떠오르곤 한다. 그가 휘몰아치는 감성을 무뚝뚝한 눈빛으로 숨기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던 적이 한두 번이었을까, 그런 생각들을 제법 자주 하게 된다. 나는 슈베르트가 그래서 참으로 정직하고 아름다운, 그러나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결의 짙은 감성을 가진 작곡가라고 생각한다.


무덤에는 얼마 살지 못했던 그의 삶과는 다르게 단아하고 정다운 느낌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슈베르트를 사랑하는 남자는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슈베르트 같은 때로 감정의 자잘함과 섬세함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알고 있어 그럴까. 아직 당신은 슈베르트보다는 모차르트인 것 같았다. 당신은 슈베르트의 묘지에서 금방 지나쳐 다른 곳을 응시했다. 여행의 묘미는 함께 서 있더라도 각자의 생각이 달라지는 어떤 지점이 있다는 것. 굳이 다 말하지 않아도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해도 관계 없다는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모습과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나와 다르다는 것, 그러나 나와 우리를 허용한다는 것. 


나는 멀찌감치 떨어진 당신의 시야에서 벗어나 그의 무덤 곁에서 슈베르트의 곡 <Wanderer>(Fantasy in C major, “Wanderer”)을 떠올려본다. 헤어날 수 없었던 방랑의 끝에 그가 넝마 같은 몸을 이끌고 이 곳에 겨우 안식을 찾았을 그 마지막을 상상해본다.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Fantasy in C major, “Wanderer”) 듣기



* 장소 : 오스트리아 비엔나 중앙 공동묘지(Zentralfriedhof) 그룹 32A 지역
* 사진, 글 : 나빌레라(navill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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