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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Aug 15. 2017

제체시온(secession):새로운 시대를 위해.

세기말의 그 비엔나(1)

링 스트라세(Ringstrasse)를 기점으로 비엔나 여행은 시작된다. 비엔나를 가 본 많은 사람들은 단 하루면 모두 돌아본다고까지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에게 비엔나는 어려운 여행지였다. 어렵다는 뜻은 버겁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속속들이 찾아먹지 않으면 그 건물들이 어떤 이유와 연유로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거기에 서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대도시는 모두 비슷하다. 그러하기에 비엔나를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본다는 것은 좀 어렵다. 뮌헨에서 느꼈던 계산된 딱딱함도, 프라하에서 느꼈던 말랑말랑한 낭만도, 부다페스트에서 느꼈던 20대와 같던 우울감도 비엔나와는 다르다. 


비엔나는 단정하다. 첫 느낌은 그랬다. 단정한 이 곳에서 사람들은 한 세기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 상념 속의 비엔나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음악과 예술의 도시, 여유가 트램을 타고 각지를 떠돌고 있으며 자전거 도로 위에서 쌩-하고 지나가는 젊은 남녀들의 상큼함 정도였다. 막상 슈타츠오퍼(국립 오페라 하우스)를 바라보며 아침을 먹을 때에는, 감회가 남다르기는 했다.


여기를 꼭 와보고 싶었어.
제체시온의 입구

당신의 이 말을 나는 '이 곳만 와도 된다고 생각했어.'라고 까지 생각했다. 블로그에 검색했을 때에는, '베토벤 프리즈' 밖에 없어. 그거 하나 보려고 9.5유로를 준다는 것은 너무해.라는 반응이 대다수. 그래, 나는 그 별 것 아닌 베토벤 프리즈를 봐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슈타츠오퍼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 빈 대학이 3분 거리, 비엔나 필하모닉이 늘 연주를 하는 뮤지크페라인이 에워싸고 있는 그 한가운데에 있는 건물. 위치도 참 반항적이다. 이 모든 고전 예술에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보통 저 외곽 어딘가로 가지 않나? 이런 우스갯소리를 해가며 제체시온을 이 '위대한' 모든 곳들보다 제일 먼저 찾아갔다. 


세기말의 비엔나를 이끌었던 하나의 축이었다. 오토 바그너(Otto wagner)가 세기말 링 스트라세를 직접 뚝딱뚝딱 만들었다면 여기에 모인 이 반항아들은 그 만들어진 공간에 또 다른 경험과 예술을 심었다. 예술의 심장 그 정점의 공간에 말이다. 그게 제체시온이고, 그 제체시온은 사실 베토벤프리즈 하나로 족하다. 물론 다른 상설전시도 있고, 설치예술도 항상 있어 보였다. 그러나 클림트가 작업한 그 벽화 베토벤 프리즈. 그 앞에서 우리는 30분 정도 머물며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의 멜로디를 떠올렸다.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바탕으로
귀머거리가 된 베토벤이 쓴 교향곡 9번 합창(choral). 
그 합창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 클림트의 벽화 <베토벤프리즈 Beethovenfries>.
그 베토벤의 교향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하여 벽화 앞에서 직접 연주한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까지.


첫번째 벽면의 일부
두번째 벽면의 일부
세번째(마지막) 벽면의 일부


나는 그들의 예술적 교감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을 안다는 것은 음악만을 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으며,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림만으로 불가능하며, 그 모든 예술적 감각은 장르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 저녁에 펍에서 당신은 한참을 떠들었다. 우리가 분리주의와 저항, 그 한가운데에 비엔나의 세기말을 느끼고 있다며. 비엔나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 곳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클림트의 그림을 보고야 말았으므로. 후일담이지만 후에 벨베데레 궁전에서 본 클림트의 "키스"보다도 베토벤프리즈에 더욱 선명한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비엔나에서 머무는 5일의 시간 동안 가장 오래 여운을 남겼던 곳은 제체시온이었고 클림트였다. 



무엇엔가 저항한다는 것, 그것은 동력이다. 그냥 시들하게나마 목숨 부지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자신감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생각을 많이 남기게 되는 시간이었다. 오롯이 그 시간들이 나의 것으로 돌아오기에는 시간이 걸릴지언정. 저항은 고사하고 안위의 노예가 되어버린 삶을 생각하면 가슴 저릿한 비굴함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무엇으로 하여금 삶은 더 가치로워지는가. 무엇이 삶을 더 자유하게 하는가.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베토벤의 시대는 갔고, 그 시대가 남긴 유산으로 우리는 또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당위, 그들의 목소리는 또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트렌드에서 그들이 빼놓지 않은 것은 자유였다. 무언가를 자유한다는 것 자체의 자유. 그 자유는 삶이 어떤 의미나 목적이나 아니면 아무것도 찾지 않겠다는 의지에서라도 필요조건이다.


제체시온 입구에 독일어로 새겨져 있던 그 문장을 한번 더 곱씹게 된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그 예술에는 자유를.


번외>

이 여름, 비엔나 필하모닉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로 가 있고. 모든 클래식 공연이 사실상 없는(관광객용 공연 제외;;) 이 상황에서 비엔나 여름을 가득 채운 것은 일명 '록 페스티벌'. 나는 그 제체시온 건물에서 도보 3분 떨어진 곳에서, 고풍스러운 성당 앞에 러버덕이 띄워져 있는 분수 앞에서, 새로운 분리파들을 보고야 말았다.;;

비엔나에서 나를 감명케 했던 음악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연주력이 매우 뛰어났던 3인조 락밴드 "마더스 케이크(mother's cake)" 였다는 것. 이것은 매우 엄청난 사건이다.


* 장소 : 오스트리아 비엔나 제체시온(Friedrichstraße 12, 1010 Wien)
* 사진, 글 : 나빌레라(navill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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