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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Sep 22. 2017

비쉐흐라드:프라하의 뿌리에 발을 딛으며.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의 묘지, 그리고...

프라하, 좀 다른 곳 없어?

프라하는 낭만의 다른 이름이다. 낭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쁘게 만져진 관광지 같은 느낌도 든다. 어쨌든 프라하는 가 볼만한 이유가 충분한 도시이다. 주황색 지붕들과 카를교에 서 있는 성인들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프라하성에 올라가 프라하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사실 프라하는 충분히 올 만한 여행지이다. 우리는 그럼에도 프라하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대부분의 여행책자에는 프라하를 두 구역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카를교를 기점으로 프라하성이 있는 쪽과 반대편으로. 그렇지만, 프라하를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기로 했다. 프라하성이 지어지기 전 프라하의 중심이었던, 어쩌면 프라하의 뿌리가 여기는 아니었을까 싶은 곳이었다. 비쉐흐라드, 그곳에 프라하의 마음과 온 정신이 심장부처럼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쉐흐라드로 올라가기 전 낡은 건물 하나와 만났다.

사실은,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의 무덤을 찾기 위한 탐사(!)였다. 비쉐흐라드라는 지역이 어디인지보다 그들의 무덤을 찾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그렇게 찾아보다 알게 된 곳이 비쉐흐라드였는데, 낭만과는 또 다른 형태로 호젓하고 정돈되어 잔잔한 아름다움이 있는 언덕이라는 것은 가서야 알았다. 또 여행책자에 자세히 나와있지 않은 그곳의 매력은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내심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는 않았다. 이 곳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정리된 관광지 같은 곳이 아니어서 그런지 트램을 타고 나오는 길에 낡은 건물과 골목이 드문드문 보였다. 트램에서 내려서도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영어 안내문도 잘 없는 곳에서 약간의 방황(!) 끝에 "Vyšehrad"라는 안내표지를 발견하고 제법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와가? 얼마나 더 걸어야 해?

괜히 왔나? 사람들이 너무 없어.

조금 으스스하다.

그만 돌아갈까?


서로에게 약간의 불안감을 내비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약 20여분을 걸어 도착한 곳.

언덕 위에서 블바타강을 내려다 본 모습

블바타강을 내려다보며 높은 곳에 요새를 가지고 있는 비쉐흐라드에서는 아주 먼 곳으로 시간여행을 가는 듯했다. 비가 와서 더 그랬을까, 사람들이 거의 없었는데 힐끔 보이는 사람들은 동네 주민들이 산책을 나온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보이기도 했다. 여행자의 우리의 눈에는 이 곳이 프라하의 태초의 모습으로 느껴졌다. 또한 프라하의 뒷모습으로도 느껴졌는데, 진중하고 가볍지 않은 그들만의 세월이 보였다. 그래서 더욱 연민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공동묘지는 아늑했다. 옆에는 로툰다 성 마르틴 성당이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옆으로 유명인들이 모여있는 국립 공동묘지가 자리했다. 19세기에 조성되었다는 이 공동묘지는 제법 낯선 경험이자 즐거움이었다. 공동묘지라는 어감이 주는 거부감과 다르게 제법 숙연한 마음으로 그곳을 걸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무덤에는 누가 묻혔는지 알 길이 없지만 딱 두 군데에서 우리는 제법 오래 서 있었다.


생각보다 찾기 쉬웠던 스메타나의 무덤(가운데 사진). 나는 울산에 김홍재 지휘자가 처음 상임지휘를 맡았을 때를 떠올렸다. 일본에서 무국적자로서 지휘를 하면서 느꼈을 그 설움과 정체성의 혼돈 과정을 딛고, 울산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을 그의 심정이 어땠을지를 떠올려본다. 그는 첫 지휘로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제 2곡 '몰다우(블바타)'를 연주했다. 나는 그 곡을 연주할 때 공연장에 있었고, 어떤 음반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진한 눈물을 느낀 적 있었다. 그 감동의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그의 무덤 앞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제법 기웃 거리며 여러 묘지를 살피다 발견한 드보르작의 무덤은 모양새에서 제법 인상 깊었다.(제일 오른쪽 사진) 드보르작의 곡은 교향곡도 좋고, 실내악도 좋다. 특히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는 워낙 유명한 곡이 아니던가. 특히나 4악장에서 1, 2, 3악장에 썼던 주 멜로디들을 다시 변주하여 종합적으로 정리하듯 들려주는 그 구성에 나는 제법 오래도록 탄복했다. 그 드보르작의 무덤 앞에 와볼 수 있다는 사실이 다만 신기했다.


비쉐흐라드의 랜드마크, 로툰다 성 마르틴 성당


요새 안의 공원


성당 옆 잔디밭에서 펼쳐진 현악 4중주의 연주 일부분.

부슬부슬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공동묘지에서 나와 음악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안정을 찾았다. 큰 나무 아래에서 현악 4중주가 펼쳐지고 있었고, 공기를 타고 흐르는 선율은 빗속에서 춤을 췄다.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것이지. 절대 준비되지 못한 이 즉흥성, 예외성. 사람들의 목소리는 거의 없었고 원근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소리의 무게는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동전을 한 잎 놓았고, 그들은 눈빛으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제법 오래 벤치에 앉아 가랑비에 옷이 다 젖도록 앉아 있었는데 그제야 나는 프라하에서의 여행이 완성되어감을 느꼈다. 별 말이 필요 없던 곳에서 한참을 머무르다가 어둑해져서야 정신을 차렸다.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에도 우리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잡고 내리막을 걸을 뿐. 앞서가는 커플이 강아지를 자유롭게 풀어놓고 산책하고 있었는데, 강아지와 이따금씩 눈을 마주치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프라하에서의 여행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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