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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Nov 06. 2017

프라하의 구시가지(3):빛과 그림자의 낭만

프라하의 야경

** 이 글은  <프라하 구시가지(1):낭만적 새벽 산책>

                  <프라하 구시가지(2):길 위로 흐르는 낭만의 시간>에서 이어집니다.



대부분의 유럽이 그렇듯이 여름의 프라하도 일몰시간이 매우 늦다. 저녁 8시 반이 되어서야 어둑해지는 느낌이 들고, 노을을 본다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한국의 일과로 따지면 오후 서너 시 정도의 해가 반쯤 기울었을 때 저녁을 먹는 느낌이다.(저녁은 보통의 예닐곱 시에 먹으니 말이다.) 프라하에서 야경을 본다는 일은 그래서 궁금한 편인데, 결국 우리는 프라하의 새벽, 낮, 밤을 모두 누리고 가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장소를 넓게 보았다기보다 다양한 시간을 누리게 되는 것이 이번 우리 여행의 콘셉트가 되어버린 것 같다.(아마 모든 자유여행자가 그렇듯이.)

멀리 보이는 프라하성과 뾰족하게 높은 비투스 성당의 첨탑이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은 프라하성을 직접 둘러보는 것 보다도 더 보기에 좋았다. 블바타강의 잔잔함과 그 위로 흐르는 유람선. 아마 유람선 안의 사람들도 이 야경에 흠뻑 빠져 있겠지. 까를교에 밝혀진 불과 제법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 코 끝에 와 닿았다. 프라하의 마지막은 이렇게 달콤했다.

국립 극장 앞에는 각종 공연 포스터와 공연/전시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어두워지면서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드니 불빛은 그림자를 만들어내 더 시야는 더 풍성해지곤 한다.


밤의 프라하는 생각보다 날것 그대로였다. 우왕좌왕하는 여행자들의 발걸음도 보다 선명하고,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펼쳐놓기 시작한다. 먼저 이 먼데까지 와서 우리는 평소의 생활과 일상을 이야기했다. 밤의 프라하에서 우리는 벌써 돌아갈 것을 걱정하고, 회사에서 급한 연락을 받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서서 십여분 이상 그들에게는 낯선 외국어로 통화하기도 했다. 집에 창문을 열어두고 나온 것 같아 내심 걱정하기도 했다. 흔하지 않은 여행에서 결국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한다. 그곳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이다. 결국 여행은,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찾기 위한 시도일 뿐이겠다. 밤이 된 곳의 여행은 아마 더 그렇겠다. 밤은 모든 비밀을 블랙홀로 보내는 것처럼 우리는 묻지도 않은 비밀을 서로에게 발설하게 되기도 한다. 괜히 나는 당신 몰래 티셔츠를 샀던 일을 이야기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 당신이 전혀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누군가와 절교를 했던 이야기, 간단치 않은 가족의 과거 이야기, 실패했던 연애 이야기 까지도. 아마도 당신은 놀랬겠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였다. 까를교를 바라보며 우리가 나눈 대화는 결국, 낭만이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빛과 그림자였겠다. 밤의 우리는, 낮의 우리와는 분명 다르다.



야간열차 시각은 밤 12시 55분이었다. 우리는 역으로 이동했다. 프라하를 떠나는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아마 또 다른 곳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다. 그렇지만 잊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프라하는 내게는 유럽의 첫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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