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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Nov 03. 2017

프라하 구시가지(2):길 위로 흐르는 낭만의 시간

** 이 글은 <프라하 구시가지(1):낭만적 새벽 산책>에서 이어집니다.


여행책자를 보며 찬찬히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어 보기로 했다. 새벽의 프라하 구시가지를 산책하는 것으로 프라하에 대한 맛보기를 했다면, 이제는 프라하의 아침과 점심과 저녁, 그리고 밤까지 구시가지의 길 위에서의 변화되어가는 모습 자체에 시간을 쏟기로 했다. 


유명한 곳도 많잖아? 하필 길거리야?


프라하성이나 비투스 성당 등을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유명한 장소만큼이나 사람들이 지날 수밖에 없는 생활과 통로로서의 길이라는 곳을 걷고 때로 트램도 타며 이 도시에 마음을 한참 놓아두고 싶었달까. 아마도 프라하에서의 새벽을 보아버려서 그랬지 싶다.(프라하 구시가지(1):낭만적 새벽 산잭)


길은 언제나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끝없이 뻗어있는 길을 걷는 것도, 꼬불꼬불한 오솔길도, 모퉁이를 돌아 사람을 맞닥뜨릴 것 같은 골목길도, 나는 이 공간들이 모두 시간을 데리고 가는 기관차 같다. '세상의 길을 모두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스며드는 가장 자연스럽고 인간스러운 행동처럼 생각되어서였다. 새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 것도 그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이기도 하고.

프라하의 거리는 가보기 전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아름답다. 사진으로 보이는 것보다도 아름답다. 사진으로 담지 못하는 공기의 질감은 일회적인 것이어서 사실 내가 경험한 프라하는 인터넷이나 먼저 다녀온 여행기와 일치하지도 않는다. 사진으로 모두 접하고 이미 알고 있는 곳인 듯 느껴지는 유명 관광지임에도 우리가 굳이 직접 가는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겠지 싶다. 


분주하고 복잡한 사람들이 지나는 가운데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인종, 국적, 나이, 성별 모두가 다양한, 그리고 여행자들의 일행 구성도 제각각인 이 여행자들이 대부분으로 보이는 구시가지에는 서로의 모습이 낯선 듯 느껴지는 이방인들끼리 눈빛을 마주치기도 한다. 다들 어디서 모여들었을지, 즐거운 궁금증을 안고 때로 눈인사를 해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그들도 우리를 궁금해했겠지. 내가 당신들이 궁금했듯이.

맨홀 뚜껑 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자유롭게 끼워진 보도블럭도 정겨운.

길거리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연들을 뒤로하며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러나 이내 길거리에서 보이는 많은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며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만 서로에게 늘어놓는다.


저건 뭐야? 저 건물은 왠지 있어 보여.

문화유산은 아닐까? 저 건물은?

저 노란 건물에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저 파란 건물 좀 봐! 좀 재밌지 않아?

저 건물은 높이가 몇 층이나 될까?

저 동상은 누구야?

이 다리 이름은 뭐야?


여행은 이렇게 궁금증은 자아내며,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일은 이렇게나 낯설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로 어이없는 웃음과 때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쏟는 상대에게 짜증도 한 번씩 내며 프라하를 걷고 있었다.


큰 나무가 있는 공원, 공원을 끼고 있는 루돌피눔(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펼쳐지는 공연장)이 얼핏 보이는 틈새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 그리고 독일권 음악가들의 석상 앞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체코 음악의 기둥 "안토닌 드보르작"의 동상. 동상을 유심히 보는 여행자 부부(로 추정되는)의 모습이 제법 인상 깊었다. 루돌피눔에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도심 속의 조용한 음악의 전당 앞에 서니 체코가 가지고 있는 보헤미안 느낌이 물씬 풍겨졌다. 드보르작의 동상을 보며 나도 제법 기분이 들떴다.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의 주멜로디보다 더 멋진 "신세계"를 보여준 프라하 거리에서 말이다.

까를교는 다리 위에 올라가도 풍경이 좋고 멀리서 까를교를 바라봐도 좋다.

블바타 강변의 벤치에는 여유로움이 피어나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나온 여인이 책을 읽는 모습이나 연인의 밀담을 지켜보며 프라하를 낭만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겠구나,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멀리 보이는 주황색 지붕들과 파란 하늘, 그리고 잔잔한 물결은 서로의 색감을 더 돋보이게 하며 우리의 시간을 빠른 속도로 흐르게 했다. 감탄하기에 시간은 너무 부족했으며, 길거리를 무작정 걷기에는 눈과 마음에 담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여행지에서는 음식도 여행의 일부가 된다. 먹고 마시는 사람들의 여유에서 우리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프라하의 공기를 함께 삼켰다. 특히나 프라하성 근처의 스트라호프 수도원을 둘러보고, 수도원 맥주를 간단한 돼지고기 요리에 곁들여 마셨을 때의 감흥은 더없이 좋았다. 한여름 날씨 같지 않은 기온에 비가 약간 뿌리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랬던지 또한 운치 있었다. 약간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야외에 앉아 저마다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 다른 여행지에서도 그랬지만, 유독 프라하에서는 야외 테라스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여름이지만 그늘에만 들어가면 선선해지는 기온과 쨍하고 시야가 트인 햇볕은 그렇게 도시 전체의 채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큰 바람이 불지 않아 그런지 길거리 테라스에 앉아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고의 기후였다.

우리는 손을 잡고 걸으며 인파에 섞여 '보통의 삶'을 생각했다.

낭만 말고도 삶을 구성하는 것은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낭만도 권태롭지 않은 생활 안에서 가능하지 않을까를 생각했다.

이런 낭만적인 풍경 속에서도 누군가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소소한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 그토록 어렵기에 여행을 하는 것이겠지만,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다면 각자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여행을 할 수 있겠다 싶다.

루돌피늄 건물 앞 사거리, 그 앞으로 지나가는 트램. 전기선으로 이어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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