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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Oct 25. 2017

프라하 구시가지(1):낭만적 새벽 산책

유럽 여행지에서 큰 캐리어 가방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것인지는 구시가지를 가보면 안다. 바닥의 보도블록마저도 옛 모습 그대로를 그대로 보존하며 유지보수만 할 뿐이어서 울퉁불퉁한 불편을 감수하는 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프라하의 사람들은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하며 그들의 문화유산을 자랑스러워하겠지만, 여행자로서 우리는 도착하면서부터 고난 길의 시작이었다. 어둑해진 밤이 되어서 도착한 프라하 구시가지에 손잡이가 고장 난 케리어를 끌고 걷는다는 것은 거의 재앙 수준이었다. 얀 후스 동상이 있는 구시가 광장과 틴성당의 야경에 탄성을 지르면서도 나는 들고 있는 케리어에 온 신경이 팔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겨우 숙소를 찾아가 짐을 풀고 나니 맥이 풀렸다. 피곤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 시차 적응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도착의 컨디션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시차 적응에 실패(?!)한 내가 눈을 떴을 때에는 현지시각으로 새벽 5시가 채 되지 않았다. 문득 나는, 프라하의 일출을 보고 싶었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침대에서 혼자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당신도 나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깼어?

응. 잠이 안 와.

나갈래?

어딜?

그냥 밖에.


몸을 일으켜 옷만 대충 주섬주섬 입고는 우리는 프라하 구시가 광장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아직 해가 거의 뜨기 직전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도대체 어디가 동쪽인지, 일출을 볼 수나 있는지, 왜 일출이 보고 싶은지 대책도 없이 우리는 한가하다 못해 조금은 적막한 여명의 구시가 광장으로 나갔다.

틴 성당의 첨탑과 구름, 하늘의 모습

틴 성당 뒤로 붉은 해가 떠오는 듯싶었다. 그리고 하늘의 구름은 포슬포슬했다. 그러나 어디를 가면 떠오르는 태양을 정확히 볼 수 있는지는 모르고, 이제 막 도착한 지 하루 정도 지난 상황에서 아직 해도 완전히 뜨지 않은 길거리에 산책 아닌 산책을 나온다는 일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숙소 주위를 제법 오래도록 걸었다. 해가 직접적으로 뜨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지만, 이 도시에 해가 들어오는 장면을 목격한 것으로 나는 제법 들떴다.

해가 거의 떴을 때의 구시가광장의 한적한 모습

관광객으로 북적이며 때로 소란하기까지 한 구시가 광장은 한적했다. 광장을 찬찬히 둘러보며 정돈되고 알록달록한 유럽의 건물들을 구경했다. 건축양식의 박람회 수준으로 고딕 양식부터 비교적 현대의 아르누보식 건물들까지 다양한 형태로 즐비했다. 특이하다 생각했던 것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틈이 없고 그대로 붙여서 벽을 맞대고 지어져 있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그 모습에제법 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유럽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그렇게 지어졌다. 여하튼 우리는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프라하를 만나고 있었다.


새벽 무렵 우리가 찾은 길거리는 시간이 멈춘듯했다. 새벽 5시가 채 안되어 숙소를 빠져나와 쏘다니다 보니 30분은 넘게 걸었다. 꿈결 같기도 하고, 시차로 인해 어질한 정신에 마음이 붕 뜨기도 하고, 무언가 몽환적인 느낌이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여행이란 이런 것일까.


인근의 화약탑에도 가보고, 어딘지 알지 못하는 골목들을 빠져나와 은행 건물과 관공서가 밀집한 곳에서 전봇대처럼 서 있는 시계를 보고서야 우리는 제법 오래 걸었다는 것을 알았다. 상점이 문을 열기 전의 프라하는 정돈된 가게의 의자만큼이나 단정했다. 유럽인들의 단체관광객도 많았던 프라하의 낮은 사실 낭만을 느낄 새도 없이 관광객이 많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지만 새벽의 프라하는 남달랐다. 사진을 찍고 보니 진정으로 프라하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사진 속의 프라하는, 그야말로 낭만의 화신이었다.


구 시가광장 주위를 한바퀴 돌아, 천문시계탑 근처로 갔다. 이젠 해가 거의 다 떴다. 가게들에 큰 트럭들이 식료품을 나르고 있었다. 가게들은 서서히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우리는 큰 광장 앞 더 큰 거리 앞에 조금 더 서 있다가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로 돌아왔다. 여전히 내가 프라하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채로 말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여전히 간판의 불빛이 남아있는.



덧) 사람들이 거의 없는 새벽에 돌아다니는 일을 여행객들에게(동양인들 특히 여자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나갔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네요. 역시 치안이 좋은 한국과는 다릅니다. 저 역시 혼자였거나 일행이 여자였다면 아마 나갈 수 없었지 싶습니다. 간간히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었고, 몇몇 덩치 큰 백인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거든요. 막다른 좁은 골목에서 덩치 큰 백인들을 맞딱들이는 일은 제법 긴장되더군요. 아마 다시 간다면 새벽에 나가는 일은 하지 않을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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