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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Aug 29. 2017

기차역:배웅없이 떠나오고 떠나간.

한참이나 연착되었던 열차를 타고 잠을 자며 달려온 곳. 꼬깃한 침대칸에 새우잠을 자면서도 덜컹거리는 기억 속만큼이나 희미하게 지나가는 풍경. 밤이라 풍경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풍경이 보이지 않아 밤이 된 것인지, 시간의 감각마저 희미해지며 꼬르륵 물속으로 침잠하는 느낌마저 들었던 시간을 지나왔다.

승무원이 아침식사용 빵과 커피를 주고 갔을 때야 비로소 도착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당신은 몇 번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지. 간단히 이를 닦고 거울을 보니 행색은 초췌했고, 여행과 자유와 체력은 왜 이리도 가혹한 것인지를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야간열차를 타는 것이 아니었나, 후회를 해보기도 했다. 간사한 내 마음을 겨우 숨기고 내려보니 플랫폼은 북적였고, 여기는 또 새로운 사람들이 공간을 차지한 멸망한 왕조의 유물과도 비슷했던 동네, 부다페스트.



아침시간의 한적한 플랫폼은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낸 흔적으로 공기가 제법 야위어있다. 도착했다. 잘츠부르크.  새벽 일찍 2시간 정도를 달려온 곳이었다. 공기는 청량했고, 주위는 고요했다. 노곤한 몸으로 잠을 청하고 싶었으나 차마 잠을 잘 수 없는 그 시간을 지나 도착했다. 당신은 피곤한 눈빛으로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원피스 차림에 스니커즈를 신은 엉성한 모습으로 비엔나 필하모닉의 공연을 기대하며 눈빛을 반짝였다. 구두가 들어있는 에코백을 손에 쥐고 플랫폼을 총총 빠져나갔다. 




비엔나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기차의 도착지는 다양하다. 교통의 허브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마인츠, 잘츠부르크 등을 거쳐 독일 뮌헨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북쪽인 베를린에서 비엔나로 내려오기도 했다. 반대로 베를린으로 가기도 하겠지. 스위스 방향으로도 갈 테고 이탈리아 북부로도 넘어가겠지. 나는 당신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며 다른 여행자의 가방에 붙어있는 tag을 확인하며 소곤대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우리는 교차하고 다시 떠나겠지. 플랫폼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목적지가 저마다 어디인지 궁금했던, 비엔나를 떠나던 날. 배웅하는 사람이 없는 플랫폼은 언제나 조금은 허전하고 조금은 쓸쓸하다. 비엔나를 떠날 때에는 제법 아쉬웠다. 기차역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만남. 눈빛만 지나쳐도 우리는 이미 만남과 헤어짐을 동시에 소화해내고 있는 찰나를 쪼개어 삼키게 된다. 엽서를 쓰며 떠나기 전날 밤에 들었던 빌리 조엘의 노래 "Vienna"는 여전히 귓속에서 맴돈다. Vienna waits for you.



* 장소 : 헝가리 부다페스트 켈레티역,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중앙역, 오스트리아 비엔나 중앙역
* 사진, 글 : 나빌레라(navill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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