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체시온(secession):새로운 시대를 위해.

세기말의 그 비엔나(1)

by 경계선

링 스트라세(Ringstrasse)를 기점으로 비엔나 여행은 시작된다. 비엔나를 가 본 많은 사람들은 단 하루면 모두 돌아본다고까지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에게 비엔나는 어려운 여행지였다. 어렵다는 뜻은 버겁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속속들이 찾아먹지 않으면 그 건물들이 어떤 이유와 연유로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거기에 서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대도시는 모두 비슷하다. 그러하기에 비엔나를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본다는 것은 좀 어렵다. 뮌헨에서 느꼈던 계산된 딱딱함도, 프라하에서 느꼈던 말랑말랑한 낭만도, 부다페스트에서 느꼈던 20대와 같던 우울감도 비엔나와는 다르다.


비엔나는 단정하다. 첫 느낌은 그랬다. 단정한 이 곳에서 사람들은 한 세기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 상념 속의 비엔나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음악과 예술의 도시, 여유가 트램을 타고 각지를 떠돌고 있으며 자전거 도로 위에서 쌩-하고 지나가는 젊은 남녀들의 상큼함 정도였다. 막상 슈타츠오퍼(국립 오페라 하우스)를 바라보며 아침을 먹을 때에는, 감회가 남다르기는 했다.


여기를 꼭 와보고 싶었어.
제체시온의 입구

당신의 이 말을 나는 '이 곳만 와도 된다고 생각했어.'라고 까지 생각했다. 블로그에 검색했을 때에는, '베토벤 프리즈' 밖에 없어. 그거 하나 보려고 9.5유로를 준다는 것은 너무해.라는 반응이 대다수. 그래, 나는 그 별 것 아닌 베토벤 프리즈를 봐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슈타츠오퍼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 빈 대학이 3분 거리, 비엔나 필하모닉이 늘 연주를 하는 뮤지크페라인이 에워싸고 있는 그 한가운데에 있는 건물. 위치도 참 반항적이다. 이 모든 고전 예술에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보통 저 외곽 어딘가로 가지 않나? 이런 우스갯소리를 해가며 제체시온을 이 '위대한' 모든 곳들보다 제일 먼저 찾아갔다.


세기말의 비엔나를 이끌었던 하나의 축이었다. 오토 바그너(Otto wagner)가 세기말 링 스트라세를 직접 뚝딱뚝딱 만들었다면 여기에 모인 이 반항아들은 그 만들어진 공간에 또 다른 경험과 예술을 심었다. 예술의 심장 그 정점의 공간에 말이다. 그게 제체시온이고, 그 제체시온은 사실 베토벤프리즈 하나로 족하다. 물론 다른 상설전시도 있고, 설치예술도 항상 있어 보였다. 그러나 클림트가 작업한 그 벽화 베토벤 프리즈. 그 앞에서 우리는 30분 정도 머물며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의 멜로디를 떠올렸다.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바탕으로
귀머거리가 된 베토벤이 쓴 교향곡 9번 합창(choral).
그 합창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 클림트의 벽화 <베토벤프리즈 Beethovenfries>.
그 베토벤의 교향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하여 벽화 앞에서 직접 연주한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까지.


IMG_7092.jpg 첫번째 벽면의 일부
IMG_7091.jpg 두번째 벽면의 일부
IMG_7096.jpg 세번째(마지막) 벽면의 일부


나는 그들의 예술적 교감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을 안다는 것은 음악만을 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으며,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림만으로 불가능하며, 그 모든 예술적 감각은 장르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 저녁에 펍에서 당신은 한참을 떠들었다. 우리가 분리주의와 저항, 그 한가운데에 비엔나의 세기말을 느끼고 있다며. 비엔나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 곳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클림트의 그림을 보고야 말았으므로. 후일담이지만 후에 벨베데레 궁전에서 본 클림트의 "키스"보다도 베토벤프리즈에 더욱 선명한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비엔나에서 머무는 5일의 시간 동안 가장 오래 여운을 남겼던 곳은 제체시온이었고 클림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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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엔가 저항한다는 것, 그것은 동력이다. 그냥 시들하게나마 목숨 부지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자신감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생각을 많이 남기게 되는 시간이었다. 오롯이 그 시간들이 나의 것으로 돌아오기에는 시간이 걸릴지언정. 저항은 고사하고 안위의 노예가 되어버린 삶을 생각하면 가슴 저릿한 비굴함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무엇으로 하여금 삶은 더 가치로워지는가. 무엇이 삶을 더 자유하게 하는가.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베토벤의 시대는 갔고, 그 시대가 남긴 유산으로 우리는 또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당위, 그들의 목소리는 또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트렌드에서 그들이 빼놓지 않은 것은 자유였다. 무언가를 자유한다는 것 자체의 자유. 그 자유는 삶이 어떤 의미나 목적이나 아니면 아무것도 찾지 않겠다는 의지에서라도 필요조건이다.


제체시온 입구에 독일어로 새겨져 있던 그 문장을 한번 더 곱씹게 된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그 예술에는 자유를.


번외>

이 여름, 비엔나 필하모닉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로 가 있고. 모든 클래식 공연이 사실상 없는(관광객용 공연 제외;;) 이 상황에서 비엔나 여름을 가득 채운 것은 일명 '록 페스티벌'. 나는 그 제체시온 건물에서 도보 3분 떨어진 곳에서, 고풍스러운 성당 앞에 러버덕이 띄워져 있는 분수 앞에서, 새로운 분리파들을 보고야 말았다.;;

IMG_1737.jpg 비엔나에서 나를 감명케 했던 음악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연주력이 매우 뛰어났던 3인조 락밴드 "마더스 케이크(mother's cake)" 였다는 것. 이것은 매우 엄청난 사건이다.


* 장소 : 오스트리아 비엔나 제체시온(Friedrichstraße 12, 1010 Wien)
* 사진, 글 : 나빌레라(navill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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