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진정으로 상실喪失했는지를.
나는 '다 두고 떠난다'는 말의 무책임을 알고 있기에, 너의 뒷모습을 '먼저' 보아주는 것이 마지막이 되길 바랬다. 그럼에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너보다 먼저 돌아 나왔다. 나는 뒷모습을 보이며 떠나오는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탓인지, 걸음마를 처음 해보는 아이의 생경(生硬)한 얼굴처럼 당황했다. 지나고 보면 별 일도 아닐 텐데, 당장 세상이 끝날 것처럼 목놓아 울 수 있었던 너는 세상보다 맑았다.
상실喪失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며 나는 사람이 가진 영혼의 색깔을 가늠해보곤 한다.
너는 이제 색칠을 시작하려 하는 도화지처럼 마냥 희었다.
아마 너는 그렇게 계속 흰색으로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상실을 진하게 겪으면 우리는 외로움에서 한 발 멀어질 수 있을까.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라는 점에서 상실은 그다지 겪고 싶지 않은 일이나, 막상 겪어봐야 진심으로 '상실'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헤어져봐야 안다,
떨어져 나와 봐야 안다,
끝나 봐야 안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깊었는지.
안타깝게도 우리는 함께 있을 때에는 알지 못했던 서로의 존재를 상실했을 때에만 발견한다.
좋아했다면 많이 운다. 많이 웃었던 관계에서는 많이 울게 된다. 좋아하는 감정이어서 나는 너를 위해 울어주고, 웃어주고, 화를 내기도 하고, 겁을 먹기도 했다. 상실이라는 단어는 내가 너를 잃는다는 뜻이므로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상실에는 어쩔 수 없이 고독의 찬바람이 분다. 그나마 상실을 아무에게나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것은 사랑의 흔적이라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