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나요.
원했던 것은 다만 '사랑'이었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한 걸음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돌아보면 아무리 껴안아도 내 가슴과 당신의 심장이 포개어질 수 없다고 소리쳤던 어느 시인의 '선천성 그리움'*처럼, 당신과 나는 어긋나는 일이 일상 인지도 모르겠다. 한 걸음도 사랑 밖으로 나간 적 없었지만 한 걸음도 당신과 내가 일치하기 어려웠던 것은 어쩌면 순리였겠다.
그것은 진정 '사랑'이었을까.
내가 원했던 시간에 당신이 오길 '간절히' 바라는 것은,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당신을 원한다'는 말을 '사랑한다'라는 말 대신 쓸 수 있을까.
어떤 '바람'은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내세우는 정치 같았다.
어디까지가 '사랑'이었을까.
내가 그로 인해 울고 괴로워 잠을 설치고 상실하여 느끼는 괴로움까지만 사랑이었던 것 같다.
나머지의 나는 정치였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미명을 내세우며 그 대가로 요구한 정치.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삶에 대한 권태가 깊어질수록 사랑은 멀리 있다. 대상을 규정지을 수 있는 사랑은 자신의 삶에 대한 권태가 사라진 후에야 가능하다.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에서의 엠마가 생각났다. 잘 차려입은 엠마가 애인을 만나기 위해 숲길을 걸으며 자주 하늘을 보았을 것 같았다. 햇빛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엠마는 햇빛으로 치장했다. 아무리 껴안아도 내 것일 수 없는 햇빛속에 머물렀던 그녀의 권태로운 삶과 연애를 바라본다. 삶을 액자 속의 그림 보듯 살아가는 사람에게 사랑이란 갚지 못할 만큼의 빚더미일 뿐.
햇빛이 나의 어둠을 몰아낸다 하여도, 스스로 햇빛이 되지 않는 한 사랑은 간단치 않았다.
* 함민복 시인의 시 '선천성 그리움'의 전문을 변형하여 인용
** 이성복 시인의 시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의 제목을 그대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