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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Sep 06. 2015

여성과 남성보다 사람이 먼저.

우리는 아무에게나 '여자(남자)'는 아니다.



"명료하다"는 말로 나의 특성(?)을 설명해준 사람이 있었다. 이 표현이 주는 좋은 느낌도 알고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그다지 좋은 표현은 아니다. 단정하고 싶으나 자꾸 생각이 단단하게 굳어간다는 느낌과도 비슷하기 때문에.(사실 이 부분이 걱정이다.) 사실 더 나쁜 단어가 떠올랐을 수도 있지만, 나의 감정을 고려하여 완곡하게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이 표현에 갸우뚱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이해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명료"하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인생을 사는 모든 이가 겪을 법한 여러 일들을 겪으며 삶이 복잡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유달리 컸다. 복잡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무엇이든 생각을 통해 정리해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복잡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생각이 많아지니, 생각이 복잡해지는 문제도 있다.) 정리하고 정해진 것들은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여러 색의 색연필처럼 더 이상 흩어지지 않길 바란 것이다. 또한 생각의 정리를 위해서라도 나는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또 어떤 상대의 의견이나 이야기를(잘 정돈된) 듣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모르는 주제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이야기해주는 것은 더없이 좋다. 그런 사람과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아마도 인생의 한 부분에서 나는 성공이라고 감히 생각했다. 또한 관계의 정수(精髓, essence)는 '사랑'과 '연인'이라고 생각하므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당연히 그 부분을 먼저 보아주기를 늘 원했다. 이런 생각들이 있어서 그럴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각의 교류'는 매우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 부분에 대해서 언제나 주목했다. 누굴 만나도, 어떤 관계에 놓여도, 외향적인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먼저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대해 크게 부담을 느끼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특히,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아주면 좋을지에 대해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결론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어떤 인간관계에서건 나는 처음부터 "여자"로 보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먼저 "사람"이고 싶다. "동지"이고 싶고, "인간"이고 싶다. 물론 쉽지 않음을 안다. 어떤 사람들(직장동료 등)은 '여자'라고 보며 낮추어 생각하는 뉘앙스를 자주 보였고, 더구나 '나이 든 여자'가 아닌 '어린(젊은) 여자'로 규정하여 지레짐작하고 나를 대하는 경우들도 많이 보았다. 경우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이런 관점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어떠한 관계에 대해서도 나는 큰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나를 "여자"로 먼저 보았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 끝이 그다지 좋을 수 없었다. 어떠한 관계에서도. 따라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어도 이 부분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만 했다. 관계의 발전은 '수평'을 기저에 둘 때만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상하관계' 혹은 '수직관계'의 느낌이 조금이라도 개입되면 그 관계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반드시 한계점이 있다. 모든 관계에 수명이 있다 하더라도 끝이 뻔히 예상되는 관계에 대한 흥미가 나로서는 없다.


그러므로 연애를 한다면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동등하게 대해주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다. 거꾸로 내가 동등하게 한 인간으로서 저 남자를(또는 여자. 혹 아는가, 내가 양성애자일지.) 존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남성성(이를테면 남성적인 근육, 물리적인 힘, 권력 등)"을 쉽게 드러내고 그것을 매력으로 생각하여 내게 인정받으려 하는 남자들에 대해서는 관심 없다. 이성으로든 사회생활에서의 관계이든. 바꾸어 "여자"라서 배려받는 것에 대해서도 지극히 경계하는 편이다. "배려"는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배려이거나, '사랑하는 관계'에서 사랑의 표현으로 적합한 것이지 성별에 좌우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성'이어서 받을 수 있는 배려(이를테면 남자가 먼저 문을 열어준다든지, 나의 무거운 짐을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당연한 듯 남자가 먼저 들고 간다든지.)를 생각 없이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언젠간 '여성'이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불합리도 반드시 따라오게 된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세상의 모든 면은 양날의 검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도 통한다. 그러므로 여자이기 이전에 최대한 인간이고 싶다. 사실 이렇게 생각은 하지만 관계는 상호간의 문제인지라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행동에 즉각 옮기지 못하는 면이 있다. 특히 사회생활에서. 그러나 최대한 견지 하려고 한다. 그러나 절대 놓칠 수 없는 관계는 연인관계이다. 연인 관계에서 마저도 남자가 먼저 "사랑"을 이유로 "여성성"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경우엔 좀 더 심각해진다. 나는 한 번도 그런 방식으로 내 사랑을 증명하고 증명받아 본 적이 없다. "여성성(성적인 표현까지 포함)"은 사랑을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여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에게나 나의 "여성성"을 보이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나의 계획된 의도에 의해 "여성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때로, 아니 자주, 아주 "저렴한 인간"이긴 하나 절대로 "쉬운 여자"는 아니다.


관계 맺기에 대해 여자로서 남자가 가지지 않은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반칙 아닌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관계에서 "이해(利害)"만이 강조되는 사회적 분위기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타산적 관계는 소비밖에 되지 않으며, 나 역시 누군가의 '도구'밖에 되질 못한다. 우리는 아무에게나 "여자(남자)"는 아니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친절할 지언정, 모두에게 상냥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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