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에서 스물이 될 때가 기억난다. 내게 남아있는 스물이 될 때의 기억은 사진처럼 남아있는 한 장면인데, 껌껌한 방안 웅크리고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아마도 스물이 되기 직전의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때 나는 왜 울었는지 지금은 알길은 없지만 복잡한 심경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대학 진학의 문제와 집안 내에서의 알 수 없는 중압감, 몇 안 되는(?!) 고등학교 친구와의 이별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리만큼 별 일 아니었지만(유치하다는 생각을 할 만큼 지금은 그때보다는 자랐겠지만) 당시에는 온갖 괴로움을 껴안고 어쩔 수 없어 눈물만 흘렸던 것 같다. 여지껏 신기한 부분 중의 하나가 어릴 적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사라져가고, 10대의 기억은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물이 되어서 스물아홉에서 서른 언저리까지의 기억을 생각해보면,
실패 - 좌절
이 두 단어로 점철되었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서른이 되어 희한하게도 나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의 가사가 거짓말처럼 이해되었다. 어떠한 단어나 문장이 '이해된다'라는 말의 무게도 이해되었다. 이십 대까지 읽었던 책들이 모두 이해된 줄 알았으나, 내가 이해하고 있는 책은 몇 권 없었다. '이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이해'는 관념에서 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깊은 사고와 생각 따위는 별로 의미 없었다. 또한 부모(어른)가 정해둔 시간표에 의해 움직였던 10대의 삶에서 겨우 벗어났을 때의 20대에서 과연 관념적 사고라 한들 그게 나의 것이 맞았을까. 내가 내 입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몇 개나 있었으며, 나의 손과 발로 내 삶을 만들어 간 부분이 몇 개나 있었을까. 20대는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나 다름없기에(헤세의 <데미안>이 10대의 청소년 추천도서목록에 들어있는 이유를 서른이 넘어 알았다. 물론 나는 10대에 <데미안>을 왜 읽는지도 몰랐으며 읽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삶을 '살았다'기보다 '살아졌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그리하여 20대에는 머릿속에 갇힌 두서없는 관념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여러 일들을 감내하는 과정이 남아 있었던 같다. '실패와 좌절이 있을 수밖에 없었구나'라고 서른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 시절을 토닥토닥 해본다.
20대는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며, 10대 때에 읽고 배웠던 수많은 것들을 직접 실현해보며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시간이었다.
10대의 기억이 희미한 이유는 이미 오래 전의 기억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의 인생을 '내 것'으로 만들었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쏟아지는 비를 맞은 기억이 있는가. 어쩌다 비를 맞은 기억이 아니라 우산을 손에 들고 혹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뛰어나가 비를 맞은 기억이 있는가. 자신이 '직접'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한 모든 실존적 '행동'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어도 기억에 강하게 각인된다, 선명한 사진보다도 더. 20대는 이런 기억을 어떻게 만드느냐의 방법을 찾고 연습을 해 보는 시기였다 싶다.
서른이 되었다. 폭풍우 같았던 시간들이 멈춘 듯했다.
거짓말처럼 폭풍은 멈추었다. 물론 만 30세 정도까지.(31, 32세까지) 그런데 삶은 달라진 것이 없다. 하는 일은 여전히 고민 투성이 이고, 취업 문제부터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과 현실적인 부분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지금도 내 삶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내 나이 삼십대 중반이지만 이루어놓은 것도 사실 없다. 그럼에도 나는 20대의 폭풍이 끝났다고 믿고 있다. 청춘의 한 장막이 지나갔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기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서른이 넘어서이다.
내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내가 어떤 음악을 즐겨 들으며,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편안해하는지, 내가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이 맞는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은 누구인지, 그러므로 나의 사랑은 어떤 모습인지도 이제 알게 된 것 같다. 20대의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다시 첫 발걸음을 내 디딘 기분이다. 나의 몸을 내가 책임지고, 나의 몸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나의 '생각'이 타인과 다른 나만의 '생각'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서른이 넘어서이다.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생이 시작된 것이다. 나의 삶이 시작되면서 서른이 넘어 시작된 사랑은 그리하여 이전의 사랑과도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다. 나의 중심이 정해져 가면서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고 타인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더욱 생겨난다고 할까. 생활에 대한 문제와 현실감각이 20대와는 다르게 사회인으로서 불안을 더욱 크게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랑과 현재(present)와 행복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 것도 30대가 지나서였으므로.
사랑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의미 없음을 몰랐던 것 같다. 요란하고 강렬했던 20대였을 때엔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몰랐던 것 같다. 사랑을 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사랑의 중요함과 소중함은 등한시할 때가 많았고, 세상에 가장 흔한 것이 또한 사랑이라 느꼈다.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으니 누구나 연애를 하고, 누구나 이별을 한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혹은 누군가의 마음을 바라보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먼저 들여다보기에 바쁜. 그러니 누구나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꿈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때에 비로소 꿈을 향한 '나의' 한걸음은 시작된다고 했다. 부모를 넘어서야 어른이 될 수 있듯이. 사랑도 그러했던 것 같다.
열망과도 같은 사랑이 지나가고 나서 절망에 허우적대며
'더 이상 사랑은 없다'라고 절규했던 20대의 사랑을 끝내고,
폐허에서 다시 사랑을 일으킬 수 있었을 그 순간에 나는 서른의 문턱에 서 있었다.
나의 폐허에서 아무것도 생존하지 못할 것 같은 그 공간에 일어난 사랑의 소중함은 말로 다 적을 수 없을 경이로웠다.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순간에 시작된 사랑은, 절망을 맛 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희망과도 비슷했다.
장래희망이나 꿈에 대해서도 생각이 달라졌다. '자신이 갈 수 있는 길'과 '자신이 할 수 있는 높이와 깊이의 한계'를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한계를 알게 된다'는 점이 20대에는 '절망'으로 읽혔다. 그러나 30대 중반의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 이 문구는 '지혜'와 '겸손'으로 읽힌다.
서른이 되고 가장 중요한 점은
언젠가는 '끝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20대의 사랑이 아니라, '모든 사랑에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점이다. 20대 후반에 알게 된 그 사실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윤동주 시인이 이야기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이 시를 10대에 외우고 30대가 되어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일의 고단함을, 그 순수함을, 그 용기를.
사람의 삶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귀하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서른이 되는 것이 그토록 괴로웠다.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 아무것도 해 놓은 것 없이 지나가는 20대가 원망스러웠고, 세상이 싫었다. 2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는 생일도 즐겁지 않은 20대였다. 30대가 되고 여전히 나는 골몰하고 고민하고 더 많은 짐을 지고 있는 듯 녹록지 않지만 이제는 20대 후반 때 느꼈던 감정이 들지 않는다. 막연하게나마 40대도 별 문제없이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아마 별다를 것 없이 이후의 시간들도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나를 포함하여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흩어진 각자의 삶에 삶에 미소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맞을 이후의 시간들에 대해서도 지금처럼 용기 잃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