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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Dec 19. 2024

잃었다면 사랑이 맞겠군요.

마르그리트 뒤라스, <사랑>

이름을 부를 수 없다.

옆 자리에 몸을 부리며 손가락을 까딱한다.

_언제 온건가요?

_아까부터 있었어요.

입에 대었던 물을 내 머리 위에 붓는다.

뜨거운 입김이 입술 밖으로 간신히 빠져나간다.

고성(古城)의 이끼처럼 권태롭다.

남은 빵 한 조각을 그에게 내민다.

물에 젖은 빵을 받아 든 그가 우걱 씹는다.

해가 자취를 감추는 방향으로 나는 머리를 두고 눕는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물 한 잔을 다시 나의 머리 위에 부어 머리카락이 완전히 젖었다.

_여행을 떠날 건가요.

_아니요.

누운 채 보이는 먼 곳의 그녀,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다가온다.

그의 옆에 나란히 서서 이국의 언어로 말한다.

나는 시계를 찾는다.



젖은 머리카락을 만지며 다리를 꼬았다.

하늘색이 어두워진다.

파도소리가 하늘에 박제되었다.

길을 가던 남자가 누워있는 나에게 물었다.

_시계를 잃어버렸나요.

_아니요, 사랑을 잃었어요.

_잃었다면 사랑이 맞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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