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바람이 제법 찼던 만추의 11월에, 야외 벤치에서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4시간을 기다려본 적이 있다. 무작정.
만나기로 했던 날짜와 요일은 맞는듯한데, 연락은 되지 않고. 연락이 닿지도 않는 사람을 무작정 기다려본 일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의 나는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강렬한 마음을 품었던 듯싶다.
나는 그와 자주 만나던 장소의 벤치에서 (활자조차 읽지 못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등받이에 기대지도 않고 불편한 자세로 앉아 기다렸다.
바람은 건조하고 싸늘했다. 얼굴에 부딪히는 자잘한 모래알과 어지럽게 헝클어지는 머리카락을 다듬어보려 매만졌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하늘의 구름도 중력을 이기지 못하는 듯 더 낮아져 손에 닿을 것 같았다. 간신히 그와 연락이 되었을 때, 적당한 안부를 묻는 인사를 주고받는 둥 마는 둥. 그를 만나기는커녕 속삭이는 밀어를 주고받는 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덫에 걸렸다는 것을.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 그러나 빠져나가기 쉽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그럼에도 빠져나가고 싶지 않다는 색다른 감정.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과 빠져나가고 싶지 않다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가지게 하는, 새로운 감정의 세계로 나는 발을 들이고 말았다.
어떤 감정은 저주 같다. 그리하여 현실감을 잊게 하고 더 이상 나를 원래의 나로 살지 못하게 한다. 이전의 나를 죽이고 새롭게 태어날 수밖에 없게 한다. 그런데 이제부터의 나는 나로서 산다기보다, 그를 살기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만 같다. 그리하여 어떤 시간은 나를 키운 것의 팔 할이 그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시간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의 문장들은 그 처절한 ‘덫’에 걸린,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모자라는 강렬함에 휩싸여 본 적 있는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이끌어내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작품이 프랑스에서 발표되었을 때 평단에서는 혹평이었어도, 대중들 사이에서는 큰 사랑을 받았으리라. 2022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아 그녀의 작품이 더욱 대중적으로 알려졌을 때, 나는 혼자 몰래 읽던 연애편지를 세상에 들킨 것만 같았다. 아니 옛 애인을 세상 사람 모두에게 들킨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누고 헤어진 뒤 어려운 것은, 잊는 것일까 아니면 기억하는 것일까. 나는 잊는 것이 어려워 헤어짐을 ‘고통’이라 여겼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왜곡된 기억은 점과 선으로 시공이 뒤섞인 채 아무렇게나 부서져 머릿속 먼지처럼 떠다닌다. 나는 나를 위해 그를 기억에 남겨 그는 피카소의 추상화처럼 머릿속에 재조합되어 기억된다. 오롯한 기억이란 그래서, 환상에 가까우리라.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기억이라 부를 수 있을 그 강렬했던 사랑에 대한 기억을 최대한 놓치지 않으려, 어떤 미사여구도 동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담담하게 기록해놓았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여 이어지는 문장들은 어떤 남자와 나누었던 순간과 그와 나누었던 모든 애정의 몸짓을 아주 세세하게. 그림과 사진, 영상보다 더 강렬한 글로서, 어떤 시간을 붙들어맸다. 독자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지 않을까라는 공감을 위해 썼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쓰기 위해 썼다는 느낌마저 든다. 어떤 시간이 희미해져 지워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억으로 훼손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그가 스스로 통과한 시간에 대해 부끄러움 없는 복원을 시도했다. 완전히 연소되지 못한 그을음과도 같은, 비루함과 찌질함도 남김없이 썼다. 사랑하며 느꼈던 크고 작은 실수와 내면의 바닥까지 맞닥뜨리는 그 장면들을 모두 가감 없이 썼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반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사랑했던 한 남자에게 이 글이 부담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모르지 않음에도 썼다.
한 남자를 기다리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집 밖으로 나가있게 하는 일.
한 남자와의 잠자리를 위해, 자신이 입을 속옷과 스타킹과 화장까지 세세하게 챙기는 일.
한 남자를 거부할 수 없어 흔들리는 자신을 부여잡는 일.
한 남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 목적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곳으로 비행기 티켓을 사는 일.
그 행동들 뒤에 오는 후회로 망가지고 일그러진 일상.
그녀는 그를 만나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맞을까.
누군가를 열렬히 원하고 욕망한다는 것,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행복을 보증하지 않는다.
열정이 슬픈 것은 언젠가는 너무도 차갑게 사그라든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온도차를 견디기 쉽지 않다.
모든 것이 아득해질 만큼 간절히 ‘필요’하다면, 누군가를 ‘욕망’해 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이 소설이 낯설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 필요는 ‘숭고’와는 거리가 멀다. 이 세속적인 단어는 자극적이다. 그 자극적인 단어에 실망하기도,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필요’만큼 솔직한 감정이 있을까. 그만큼 순수한 표현이 있을까. 그리고 순수할수록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하얀 얼굴은 실은 ‘필요’ 이외의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필요하다는 말은 누군가의 양보를 요구하게 된다.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늦게 깨닫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잘못을 저지르며 산다. 그렇게 살아가는 시간들이, 우리의 생활을 점으로 잇고 있다.
멍청하고 어이없는 행동들을 하는, 그 강렬함에 모든 삶이 잡아먹힌 그녀가,
책의 마지막에 썼다.
_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_(책 66-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