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지만.
단어에 기대어 시간을 보낼 때가 있었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는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누구보다도 힘이 세고, 누구에게도 부담되지 않을 그런 단어들 말이다. 문학이 무엇인지,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 조차 해본 적이 없었고, 읽은 것도 없었던 시절. (지금이라고 많이 달라지지도 않았겠지만) 나름 유명하고 귀했던 작가들을 찾았던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 작가들이 길어 올린 단어와 문장들에 오랫동안 마음을 기대고, 또 그 안에서 숨 쉰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잊었다. 나는 이제는 폐허가 된 이십 대를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다시 돌아볼 일 없다고 생각했던 시간. 돌아간다는 것은 지독한 악몽 같다고도 생각했던 시간. 누군가는 그때를 치열하게 살아서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나는 치열했다기보다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그 고통이 나를 자라게 했느냐고 물으면, 아직도 '판단 중지'중이다.
시인님의 시들에서 제 기준에 몇몇 단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시인님께서 생각하시기에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요. 이를테면, '처사', '흰목물떼새' 이런 단어들이요. 혹시 이런 단어들은 어디에서 찾으시는지요. 여러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느낌을 받아서, 이유가 있으실까 궁금했습니다.
더불어, 한국사 그중에서도 한국의 현대사를 공부하던 시절에 제게 좀 갑갑하게 그 시대가 와닿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시인님을 통해 시인 '백석'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육사와 윤동주 말고도 오장환, 임화와 같은 시인들이 있다는 것도 그 무렵 함께 알게 되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백석을 읽으면서 그 시절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십 년도 넘은 시간이지만 지금에 와서라도 시인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 참석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괄호 안의 말은 다 뱉어내지도 못했고, 위에 쓴 문장처럼 매끄럽게 말하지도 못했다. 땀이 쥐어진 손바닥만큼이나 끈적이는 마음을 정제되지 못한 말로 뱉었다. 나는, 그 시인의 단어를 읽었던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났다. 짧은 시간 동안, 조금의 실망이라도 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무서웠지만.
솎아내고 간혹 달라지기도 하는 우리 집 서재에 시집이 많지도 않은데, 안도현 시인의 시집이 4권이나 있었다. 내게는 어떤 시간의 무늬처럼 여전히 그 자리에. 이제는 책등이 손상되기도 했고, 군데군데 접힌 흔적이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두텁게 나이테를 두른 듯 귀퉁이를 펴는 것이 어색해질 정도가 되었다.
나는 2009년에 샀던 ⟪간절하게 참 철없이⟫와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책장에서 뽑았다. 그러나 시인 앞에서 책을 내밀 때는 2009년에 육천 원을 주고 샀던 그 시집만을 내밀었다. 나의 감상과 귀퉁이가 그렇게도 접혀있었던. 김선우 시인이 표지의 뒷면에 문장들을 거들어 둔 그 시집이었다.
자신의 언어가 이미 낡아버렸다는 말.
경북 예천으로 귀향해 집 마당에 연못을 파다 큰 구덩이가 무서워졌다는 말.
시를 쓰지 못하지만 할 말이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대필을 하고 있다는 말.
검은색 티셔츠에 약간은 검게 그을린 얼굴.
자신의 시는 백석을 베끼고 백석을 표절하는 시인으로 살았다는 말.
나는 오랫동안 삶의 한 분야를 천착한 어른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과거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생각하지도 않았던 어느 시간에 대해 다시 고통으로 직면하지는 않아서.
내가 나를 의심하는 순간에 나의 중심을 잡아 주는 것은 그때 내가 읽었고 들었고 함께 했던 것들이다. 나는 내가 읽은 것과 들은 것과 경험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므로.
시인과 만남의 자리라고 해서 그 시인의 시집을 살 이유는 없었다. 시인의 말처럼, 그의 단어가 낡았을까 봐.
나는 그가 말하는 '요즈음'의 시인들을 간혹 읽고 있으므로. 성동혁의 ⟪아네모네⟫에 수록된 시에 띠지를 붙이고 있는 게 요즘의 일상 한 조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신작 시집에 수록된 "너에게로 망명을 가고 싶은 날"이라는 시를 읽고서 시집을 사야겠다 생각했다. 시인은 요즘 시인들 따라 해봤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요?라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엄격한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한 시인의 몸에 새겨진 단어들을 오롯이 모셔두고 새로운 것들에 새로운 방식의 은유와 낯설게 보는 방식은, 기존의 안도현 시인에게서 자주 본 적 없던 새로운 모습이었지만 안 시인이 아닐 수는 없는 그 분위기가 좋았다.
나는 대체로 한 권의 시집에서 단 한 편의 시에서 받은 울림이라도 있으면 책값을 치르고 산다. 그 단어와 문장을 무료로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권의 시집에서 여러 번의 울림이 있었다면 나는 정말 싼 값에 단어와 문장을 덤으로 산 것이 된다. 나는 이렇게 만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그의 생명 일부를 산다. 나는 아마도 이런 단어와 글을 여기저기서 얻고 주워 영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생으로 가고 있다면 지난 나의 이십 대에게도 너그러운 마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앞산에 진달래가 문드러질 때
앞산 진달래가 뒷산 진달래에게 건너가고 싶은
그 순간을 정치라고 하자.
- 안도현, "너에게로 망명을 가고 싶은 날" 중 일부.
(시집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 문학동네,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