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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Sep 12. 2015

생각을 훔치지 말 것.

내 글은 오롯이 나로부터 나온 모든 것이어야.

'무엇을 쓸까?'라는 고민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고민은 더 깊어졌고, 그만큼 좌절의 순간이 많았다. 여기저기 끄적여두었던 것들을 일단 모아보자는 심산으로 예전의 단어와 문장들을 모아보았다. 마음에 드는건 잘 없고 그저 전부 어떤 토사물 같은 느낌도 제법 든다. 아, 이런 글을 쓰려는건 아니었는데-


글의 주제는 언제나 주위에서, 그리고 내가 겪은 것들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데, 그안에서 얼마나 세밀하게 관찰하느냐,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봤느냐, 이것이 모든 것일텐데. 그다지 자신이 없다, 사실.


일단, 왠만하면 책이나 영화에 대한 리뷰는 전부 제외하기로 했다. (작게나마 하는둥 마는둥 하던 블로그도 문 닫았다.) 왜냐하면 책과 영화는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많이 쓰는 주제이다. 많이 쓰는 주제라서 문제라기보다 많이 쓰기 때문에 이미 정보가 많다. 그런 글을 또 보탤 이유가 없다. 결정적으로 나는 그 사람들보다 더 잘 쓸 능력이 없다. 괜히 그들의 생각만 훔치게 될 듯 싶었다. 동어반복, 그 자체로 그 글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엄밀한 의미로 책과 영화 자체에 대한 나의 감상은 자칫 "평"이 되기 쉬운데(실제로 나는 그렇게 되더라), 평은 제법 좋은 논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엄밀한 의미로 어떤 작품에 대한 평가 자체가 내 삶에는 별 의미가 없다. 물론,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로서 필요에 의해 영화나 저작물을 인용하여 가져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다만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그 글을 쓰려고 영화에 대한 정보를 모아 쓴 평은 내 성향에 별로 맞지 않다. 인터넷 검색서비스가 더 낫다. 평은 평론가들의 문장력이 훨씬 좋다. 영화 자체에 대해 전문분야일테니 얼마나 잘 적어두었을까. 나는 그런 분야를 이야기할 주제가 못된다.


사진의 경우 여행을 통한 기행문 형태나 사진 자체를 설명하거나 정보 등의 전달을 목적을 두는 글도 지양하고 싶었다. 누구나 다 찍는 포인트, 누구나 가는 곳, 이런 곳에서 찍은 사진을 줄이는 것도 내 포인트이다. 기행문이나 어떤 장소에 대한 설명도 검색서비스에 너무 잘 되어 있다. 그런 글을 내가 쓰는 것이 내게 의미 있을까 싶었다. 역시 검색서비스에서 모두 제공한다. 나 조차도 검색서비스에서 찾는다. 그런 글을 쓰려면 나도 결국 그 장소에서 무언가를 찾는게 아니라 검색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의 창작물이 아니다.


나의 창작물은 나만이 해 낼 수 있었던 것이어야 한다. 나는 대단한 작가도 아니고, 글을 전문으로 쓰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언제나 갈구했던,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은 그 욕망과 쓰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던 수 많은 시간들을 지내오면서 나의 것으로서의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기록은 "일기"로 시작되었고, 아주 오래전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쓰는 "편지"로 이어졌으며, 함께 보아주길 바라는 짤막한 "발행"으로 이어가고 있다.


어떠한 장소에, 어떠한 사물에, 어떠한 순간순간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 글이라 생각한다. 흔적은 생각이고 생각이 빈약하면 흔적은 곧 지워져버린다. 더 많이 깊어져야 하고 더 많이 예민해져야 하며 더 많이 날카로워야 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보다도 스스로에게 냉정해야 한다. 글을 쓰는 자세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아주 먼 훗날에 나 혼자 발행한 한 권 밖에 없는 책이 되더라도, 한 권의 잡지가 될지라도(그야말로 잡스러운 일회용 글이 될지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한번은 찔러보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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