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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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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Sep 23. 2015

사랑도 매뉴얼대로 하는 세상.

20대에는 친구들의 연애상담을 그렇게도 많이 해주었다. 누군가를 만나 잘 안되면, 왜 잘 안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마치 그 두 사람의 틈바구니에 파고들어 내가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해주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다들 좋은(?) 결과를 들고 왔고, 나의 조언에 다들 고마워했다. 물론 나도 연애를 했다. 누군가를 통해 기쁨을 느껴보았으며 처절한 질투와 대책 없는 이별과 더없이 질겼던 미련까지. 남들 겪는 것들을 다 겪어보았다. 그렇기에 그런 이야기들을 자신 있게 해주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연애'를 하기 시작하면, 상대의 마음에 대하여  궁금해한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여 상대가 나와 같은지 아닌지 내가 손해 보는 것은 없는지 계산하기 시작한다.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할 행동들을 검색하기 시작하고, 상대가 어떤 상태일 때는 어떤 마음인지 '해석'하려는 생각을 늘 지니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이것에 관계가 매몰되면 문제는 생긴다. 이런 부분에 신경을 너무 많이 쓰면 연애는 매우 소모적이고 언제나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힘이 든다.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뻗어버리기 일쑤이다.


나는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 '정치'였음을 20대 후반에 알았다.


상대를 생각만 해도 기쁘고, 나를 쳐다만 봐 주어도 행복했던 시절을 지나 '연애'의 단계로 들어가면 자칫 '사랑'은 소멸하고 어느샌가 '정치'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대가'로 물질이나 어떤 행동을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 요구하게 되는 모든 행위를 나는 정치라고 생각한다.)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늘어만가고(물질적, 정신적 모두), 그에 맞게 따라오지 않는 느낌이 들면 '사랑의 잣대'라는 이름으로 그를 심판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상대를 위하는 일이라 철석같이 믿는다. 그렇다, 나는 매우 지독스러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는 연애에 대해 매우 잘 아는 사람인  것처럼 카운슬링을 해주었다. 지독스럽다 못해 오만하기까지 했다.


그런 나의 생각을 다 무너뜨리고 말도 안 되는 카운슬링을 때려치우고 입을 딱 닫아버리게 된 것은 이성복 시인의 표현대로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실감하면서부터였다.


사랑을 말하되
사랑을 팔아먹어서는 안 되고,
사랑을 기만해서는 안되며,
사랑을 흔하게 만들어서도 안된다.
세상에 사람의 숫자만큼 존재하는 것이 사랑의 형태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연애의 어떤 '방법'이 '사랑'에 근접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어떤 정형화된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집에 갈 때에는 데려다주어야 한다든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연락을 해야 한다든지. 이런 행동들을 비판 없이 '학습'한다. 이쯤 되면 사랑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감정 혹은 자유의 표상이 아니라 이미 '사회적 행동'이 되어버린다. (나는 그리하여 연애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는'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에 근접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해가는 대로 하는 방법을 그대로 해간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학습일 뿐이다. 

언젠가부터 세상은 스펙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버려 그럴까. 사랑마저 스펙을 가지고 매뉴얼대로 실패 없이 안전하게 가려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하려 들지 않고 '연애'에 골몰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그렇게도 많이 찾고 사랑을 매일매일 이야기하고 유사 이래로 아무리 이야기해도 끝이 없는 것이 사랑인데, 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할까. 사랑에도 매뉴얼이 있는 것이라면 누가 사랑하지 못하겠는가. 사랑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감정이 아니며 항상 행복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행복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끌어안겠다는 결의가 필요하다.


흔하게 말할 수 있는 가치일수록 몸소 지니고 살기란 만만치 않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간격'을 지닌 저마다의 사랑법을 찾아 스스로 고민하고 상대에게 진중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때로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랑하면 성숙해진다고 이야기하는 것이겠다. 그리고 그 과정이 나는 어른이 되는 과정일 것이라 믿는다. 각자 사랑에 대한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어른'이어야 사랑이라는 감정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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