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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Oct 09. 2015

기혼 여성으로서의 불만

 [주의]저와 생각이 같지 않으시다면 글을 읽다가 욱하실 수도 있습니다.

1. '기혼'을 전제로 하는 모든 저급한 농담은 사양합니다.


"아줌마가 잘 한다.", "그러다가 바람난다."는 어떤 상황이라도 농담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적어도 제게는. 심지어 저는 저런 말을 저희 엄마에게도, 제 남편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게 저 말은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농담이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농담이 이 정도 수준인 것이라면 제법 실망스럽습니다. 당신들의 삶에 아줌마와 바람은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 알 수 없으나, 내게는 결혼한 여자와 불륜으로 들립니다. 결혼한 여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혼자 하는 여행이 아줌마와 바람으로 불려야 할 만큼 경계해야 할 일인가요. 당신들의 수준이 그 정도입니까. 더구나 남편 몰래 가는 여행도 아닌데(설령 몰래 간다 하더라도 왜 당신들이), 왜 당신들이 제 삶에 아줌마, 바람이라는 말로 규정하는 건가요. 불쾌하다는 제 반응에 "불쾌할 이유가 없는데-?"라는 말은 더 불쾌합니다.  불쾌해한다는 것이 불쾌를 느끼는 사람의 문제인가요, 불쾌를 준 사람의 문제인가요. 농담은 상대가 농담이라 생각해야 농담이 성립됩니다. 사람을 한대 치고, "에이, 장난이었어."라는 말의 폭력성을 당신들이 모른단 말입니까. 특히나, 사과의 이유를 "생각과 인식의 잘못"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던진 한마디 말에 '받아들이는 주체의 상황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다.'라는 사과인 듯 사과 아닌 사과 같은 이 뭉뚱그림은 무엇일까요. 진보를 이야기하면 뭐합니까, 농담 하나도 우아하게 할 줄 모르는데.


기혼을 전제로 하는 모든 저급한(특히 성적) 농담을 사양합니다. 저는 그 정도 수준의 사람은 아닙니다. 기혼자들끼리만 할 수 있는 농담을 미혼에게도 하십시오. 누군가를 괴롭힘으로써 얻는 유머, 성적인 비아냥을 바탕으로 하는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들에 대해 저는 '비인간'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유머도 무엇도 아닙니다.


분명히 인간성에 대한 '수준'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급 음식을 먹고 명품을 둘러야 '있어 보이는' 사람이 아니겠지요. 허름한 옷에 라면 한 젓가락을 먹어도 말 한마디에, 눈빛 하나에, 던지는 농담 하나에 그 사람의 인품이 드러납니다. 대체로 '사람'을 '사람'으로 봐주지 않고, '여성' '남성' 혹은 '미혼' '기혼' '20대' '30대' 등으로 사람을 세분화하여 자기만의 잣대로 판단하여 편견 실린 이야기들을 먼저 늘어놓는 사람들의 깊이가 어느 수준인지 알만 합니다.




2. 출산을 권하지 꼰대가 되지 마십시오.


아이를 낳는 것이 애국이다, 태어났으니 아이는 하나 낳아야 한다, 결혼했으니 낳아야 한다. 이 모든 말들에 대해서 저는 완강히 거부합니다. 애국할 생각 없습니다, 제가 태어나고자 했던 것이 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제 어미의 의지도 아니었겠죠.) 그러니 낳아야 한다는 말은 말도 안됩니다. 그러면 결혼하지 않고 아이 낳은 사람은 도대체 뭘까요.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 낳은 사람은 애국이겠습니까?

출산에 대해 묻지도 도움을 원하지도 않았는데 대체로 제게 출산을 권하는 사람들은, 출산 이후 하등의 도움을 줄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 '자궁'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마저 없습니까. 그러면서 왜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 가장 행복할 때가 '아이가 잠든 순간.'이라고 말하는 겁니까. 아이가 그렇게 예쁘고 좋으면 왜 아이가 잘 때만 좋은가요.

결혼하고 나서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출산입니까. 당신들은 결혼을 왜 했습니까? 출산하려고 했습니까? 저는 출산이 결혼의 목적은 아닙니다.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게 목적은 아닙니다. 마치 결혼의 유일한 목적이 출산인 것처럼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적어도 제게 출산을 권할 사람들은 제 부모와 시부모로 족합니다.  그분들의 충고까지 마다할 생각은 없습니다. 적어도  그분들의 말씀은 일면 수긍이 갑니다. 입장에 대해 이해할 수도 있고요. 특히나 저를 직접 키워보신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부분도 있고, 말의 전달 과정에서 느껴지는  그분들의 생각도 충분히 오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부모와 시부모를 제외한 나머지 그 누구도 제게 출산을 이야기할 권리는 없습니다. 농담도 온당치 않습니다.(제 친동생도, 시댁의 시부모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도 출산에 대해 무턱대고 종용하지 않은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마디로 어.이.가.없.습.니.다.)


단적으로, 만에 하나 제가 출산을 그토록 원함에도 제가 출산을 할 수 없는 몸이라면 어떡하시겠습니까. 당신은 그런 부분에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사람들의 이 몰지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을지 생각하면 어떨 때는 차라리 자궁이 남자에게 주어지면 어떨까 싶을 지경입니다.

특히나 요즘은 출산을 하지 않고도 아이를 가지는 방법도 있고, 가정의 형태는 매우 다양해져 가고 있습니다. 출산으로 모든 것을 결론 내려는 사람들의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출산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단, 이건 어디까지나 부부 두 사람의 문제입니다. 어떤 부부도 본인들의 출산에 대해 타인의 강요를 받을 이유가 없으며, 농담이나 조롱으로 혹은 인사말로도 치부될 일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낳을 사람은 낳습니다. 왜 숙제하듯 출산해야 합니까? 중간고사 치듯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그렇게 가볍습니까? 아이를 낳는 일이? 아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데. 농담으로 삼을 만큼 한 인간의 탄생이 그리도 가볍습니까.




# 결혼하고 나니 왜 이리 부조리한 것들이 많이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읽는데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결혼하시고 이런 부분들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생활 속의 저항"에 대해서 글을 써보고 싶어서 저항하듯(!) 한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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