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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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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Oct 15. 2015

하루를 '살고' 싶은 욕망

며칠을 앓았다.

가을을 앓은 것인지, 감기를 앓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리고 알았다.

웅크리고 있는 동안에 엄습하는 것들이 얼마나 고약한 것인지를.



1.

쉴 새 없이 사회 이슈는 눈 앞을 스쳐가고

쌓여있는 일들과 돌봐야 하는 것들이 내게 손을 내밀지만

나는 하늘색표지의 이선욱 시집을 읽는 것으로

그리고 "테레즈 라캉"이라는 영화를 보는 것으로

이 공간과 시간을 도피했다.

무의식 중에 '욕망'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걸까.

이선욱의 첫 시집을 읽으면서 유독 '83년생'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게 된다, 나와 근접한 나이.

"테레즈 라캉"을 보면서도 '박찬욱의 "박쥐"는 아직 아껴두어야지.' 하고 있다.

나의 욕망은 '욕망된 무언가를 함부로 열어보지 않는 것일까.'하고 있다.

아무 때고 글이 써질 수 없는 것을 보면, 글이 내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하여, 나는 글로 멋을 부릴 수 있을 위인도 못된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언제나 글을 꿈꾼다, 꿈만 꾼다.

이선욱의 첫 시집(<탁,탁,탁>)을 읽으며, 예전에 읽은 박준 시집(<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을 생각하면서,(두 사람 모두 83년생)

공교롭게도 이성복 시인의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이라는 문장이 윙윙거린다.


며칠은 이러한 생각들로 시공을 초월한 것 같았다, 내 존재가.

현실에 있으나 현실에 없고, 현실에는 없지만 존재하는 일이 있는 듯했다.



2.

아마도 당신에게 전화하다 울컥했던 그 다음날부터 앓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하루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나는 언젠가 행복할 당신과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하루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나는 100년을 살 것처럼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걱정과 기다림으로 나는 수많은 오늘을 허비했다.

그리하여 알았다, 에밀 시오랑의 말처럼 나는 언제나 '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언제나 살기를 기다린다.

사랑은 즉시적이므로 이 깨달음을 타국 만 리의 당신에게 곧바로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누군가에게 진실을 말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도 언제나 나는 위선으로 살아왔으니.

"제대로 한 걸음 걷자."고 말했다, 당신에게, 아니 다짐했다.

어쩌면 나의 다짐을 위해 당신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갑작스런 눈물의 말을 듣고 당신은 또 얼마나 힘들었겠지만.


그러나 그 말을 전하고 나는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머리칼이 쓸쓸하게 날렸다.

급기야 나는 침잠했고, 오늘까지 두꺼운 패딩을 입고 흙빛의 얼굴로 세상을 훑어보았다.

두통이 먼저 시작되었고, 온 마음이 욱신거렸으며, 잇몸이 붓기 시작했다.

누구도 나를 동정하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누구도 나를 걱정할 수 없음에 마음이 시렸다.



혹여나 제 글을 기다려 주신 분이 계시다면 미안함과 감사를 함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가을은 가을인가 봅니다. 모두의 가을에 평화만이 함께하시기를. 더불어 감기는 매우 조심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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