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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Aug 27. 2015

선물

당신은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가요?

언젠가부터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은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도 않는다. '선물'이라기보다 '필요한 것들'만 떠오른다. 선물로 받고 싶어 지는 것이 사라지면서 나는 사실 조금 우울해졌다.

그리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가끔 생각해내어 받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죄다 '비싼' 것들이다. 물질적 욕심은 커져만 가고 그것에 다다를 수 없다는 패배감까지 더해지면 선물이라는 단어가 썩 반갑지 않다. 선물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선물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선물을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을 받아도 선물로 받지 못하는 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리라. 선물은 주는 사람의 손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자세에 달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예상 밖의 선물, 가격이 의미 없는 선물과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함을 진하게 느끼고 있다.

가진 것이 지금보다 더 없을 때에는 누군가에게 주는 선물도 '필요한 것'을 사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 사람이 직접 사기 힘든 것'으로 초점을 맞추어 본다. 선물이라는 매개는 하나의  '형식'일뿐이고 본질은 사실 어떠한 '마음'이자 '호의'이다. '관계'의 다른 표현이 될 수도 있다. 


선물은 어떤 '낭비'여야 한다. 쓸모없으며 소모적이어야 멋이 있고 낭만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일,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일, 누군가에게 어떤 물질을 내어주는 일, 그것은 모두 낭비이며 소모이다. 소모의 의미가 이유가  진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소모와 낭비 속에서 기쁨을 느낀다. 내가 던진 어떤 감정이 상대에게 한번 투영되어 다시 돌아오는 그 무엇에서 기쁨을 느끼는,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낭비스러운 이런 감정을 담은 것이 선물의 본질이다. 직접적 감정이 아닌 누군가에게 나의 감정을 투영하여 다시 돌아오는 그 감정에서 더 큰 기쁨을 누린다니 말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가 아닐까.


나는 언젠가부터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꽃을 선물하는 것에 제법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돈 몇 만원에 웃을 수 있고 마음이 함께 편안해질 수 있다면 충분히 그 값을 하고도 남겠다 싶었다. 게다가 금방 지고 만다. 금방 지고 마는 그 꽃을 안타까워하며 바라보는 그 마음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묵직함도 가지고 있다. 돈으로 '아름다움'을 살 수 있는 품목이 그리 많지는 않다. 돈으로 '필요'를 살 경우가 대부분이지. 언젠간 시들고 마는 한정된 시간 속의 '아쉬운 아름다움'은 그 사물을, 그것을 준 사람을, 그것을 받은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하는 건강함도 포함한다.


기념일에, 생일에, 또 어떤 날에 문득 무얼 받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항상 나는 꽃을 이야기한다.

가끔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은 잘 생각해보면 거의 '필요'이다. 누군가가 내게 주어도 '선물'로 받지 못할 것 같다. 인간에게는 어떠한 '시간', '마음', 그리고 어떠한 '존재' 자체가 사람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다. 언젠간 다 사라질 것들, 언젠간 다 무의미해질 것들, 그런 것들만이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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