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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Sep 03. 2015

孝가 然은 아니어서

한 인간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일.

자연스러운 모든 것은 격언으로 남아있지 않으며 구호로 외쳐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자연스러움은 선악 구분이 없으며 연민도 동정도 없는  듯하다. 자연스러움(자연,然)은 가치와 판단을 포함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도 그렇다. 악한 사람이어서 일찍 죽는 것도 아니고 좋은 사람이라도 무조건 오래 살 수도 없다. 삶과 죽음은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신(神)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孝가 然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공맹의 사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라는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학습되어왔고, 그 학습이 없었다면 생각보다 세상은 많은 부분에서 비극이었을 것이다.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런 맥락에서 따로 5월 8일을 기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모두가 그러하다(然)면 '효'라는 개념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효'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사실이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할 때가 있다. 때로 엄마에게 가지는 미안함과 가끔 드는 부채감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니.


어릴 때부터 나는 내가 엄마를 가끔 싫어할 때도 있다는 점이 나를 늘 괴롭게 했다. 엄마가 싫은 내가 감당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돌이켜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느낌이다.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움(然)이 착함(善) 일 수는 없더라도 자연스러움이 악함(惡) 일 수도 없으므로 다만 이제는 엄마를 엄마로 보는 일보다, 60세에 가까워오는 한 여자로 생각하는 것이 더 좋겠다 싶다.


인간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본다는 것. 어쩌면 이것은 열고 싶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일 수도 있다.

총체로 바라보면 맥락이 보이고 맥락 속에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를 엄마로만 생각하지 않고, 어떤 인간으로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아프다. 그런데 그게 조금 더 인간적이고 성숙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이가 들어가는 엄마를 보살필 생각은 없다. 엄마의 보살핌을 받을 생각도 없다. 다만 늘 반려하며 멀지 않은 거리에서 같이 '살고' 싶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존경할만한 부분을 많이 가진 나의 '엄마'의 자리에서 함께 30년을 넘게 살았던 이 60세에 가까운 여자와 여전히 같이 살고 있다는 느낌으로 하루를 보내보고 싶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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