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상 속의 소소한 판타지는 무엇인가요?
나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판타지 혹은 몽환적인 느낌과 상황을 좋아한다. 안개가 가득한 도로를 좋아하고, 그 도로 위에 자동차 헤드라이터로 비추는 가려진 도시의 그림자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시간이지만 공간을 이동하여 몇 시간만에 나는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와버리는 느낌이랄까.
우디 앨런의 "미드 나잇 인 파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우디 앨런의 유럽 도시 투어 시리즈(!)는 사실 다 좋지만) 어릴 때엔 김정권 감독의 "동감"이라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아마 그와 같아서였다.
판타지를 꿈꾸게 된 이유는 아마도 쉽지 않았던 유년기의 생활과도 관련이 있지 싶다. 유년기를 편하게 보낸 사람들이 뭐 그리 많을까마는. 편하지 못한 유년기를 통해 각자가 배우는 것이 모두 같지 않음을 안 것도 20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아무튼, 내가 배운 것은 판타지를 꿈꾸는 것이었나 싶다. 유년기의 쉽지 않은 생활에서 동생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정면 돌파하려 했고, 나는 정면 돌파는 포기하고 상상으로 늘 어떤 것을 꿈꾸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꿈꾼다는 것은 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꿈의 실현을 간절히 바랬다기보다 꿈꾸는 그 상태 자체를 즐겼다. 그리하여 생활과 현실에 별다른 이득(?!)은 없고, 남들은 잘 모르지만 나 스스로는 인지하고 있는 능력 - 꿈꾸며 버티는 방법- 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기다림과 견딤, 버팀 이런 것들에 대한 능력이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둔다고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언젠가 마카오를 도보로 극기 훈련하듯 돌아다닌 많은 곳 중에 (한국) 사람들이 잘 없는, 그러나 놓쳤다면 아쉬웠을 후미진 곳의 어느 무언가를 찾고서야 나는 이 여행이 매우 '판타지스럽다'라고 생각했다. 아주 오래된 극장이다. 그리고 단출한 오케스트라단이 연습 중이다. 비밀의 장소를 발견한 듯했다. 물론 그들에겐 일상일 뿐이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