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할 땐 피씨방에 나란히 앉아서 와우를 했고, 결혼해서는 방 하나에 컴퓨터 2대 놓고 로아를 했다. 나는 딜러, 오빠는 힐러. 비싸고 좋은 칼은 내 꺼, 오빠가 모은 골드도 내 꺼. 내가 딜을 잘못 넣어도, 컨트롤 좋은 힐러가 커버하는 환상의 파티플.
사실, 게임을 할 땐 딜러가 더 재밌다. 차갑게 비 내리는 전장에서, 제일 앞장서서 대검을 휘두르며 적을 물리치는 주인공이 딜러니까. 그에 반해 힐러는, 파티 플레이에 꼭 필요한 역할이지만 존재감은 조금 떨어진다. 주인공의 후원자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게임 직업을 고를 땐 딜러가 가장 인기가 많다.
그래서 내가 항상 딜러다. 2개의 컴퓨터 중, 더 성능 좋은 것도 내꺼다. 착하고 불쌍한 우리 오빠는 와이프이자 주인공 딜러를 보좌하는, 아주 능력 있는 힐러가 됐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즐기는 게임 라이프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귀엽고 듬직한 남편이다.
일상생활도 게임처럼
현실에서는 오빠가 딜러다. 우리 세 가족 제일 앞에 서서, 온몸으로 가정을 지켜내는 탱커. 물론 게임 속 딜러보다 재미는 좀 덜하다.
같은 맞벌이라도 오빠는 훨씬 큰 책임감으로 출근을 한다. 회사 욕은 해도 절대 그만두거나 이직하겠단 말은 하지 않는, 극딜 바바리안 전사가 우리 남편이다. 덕분에 나는 가끔 애교 포션을 날리는 힐러가 되었다.
가끔은 나도 딜러다. 특히 육아에 있어서는 출산과 동시에 강제 주양육자이자 극딜 전사가 되었다. 밤과 낮 시간에 버서커 모드로 혼자 하드캐리 하다가, 저녁이 되면 체력을 다하고 남편에게 역할을 넘긴다. 결혼과 임신, 육아라는 새로운 전장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 부부는 서로 딜러와 힐러를 교대하는 파티플로 난관을 극복하고 있다.
네이버 웹툰 '닥터앤닥터 육아일기' 32화 출산 준비 中
사는 게 파티플이다
게임에서 파티플을 잘하려면, 각자의 역할 수행이 완벽해야 한다. 템이 좋던 컨트롤이 기가 막히던, 어떻게든 포지션을 해내야지만 파티플 보상이 높아진다.
결혼생활도 똑같다. 각자의 회사에 충실해야 살림이 풍족해지고, 요리던 청소던 맡은 바 집안일을 잘 해내면 가정이 평화롭다.
육아는 더 하다. 딜러가 분유를 먹이는 동안 힐러는 설거지를 하고, 딜러가 애기 목욕을 시킬 때 힐러는 청소를 한다. 완벽한 파티플이 아기의 건강한 웃음을 만든다. 사실, 파티플이 깨지는 순간, 육아는 불지옥 난이도로 급상승한다.
게임 속 완벽한 파티플은 캐릭터를 영웅으로 만들고, 세계 평화를 이룩한다. 일상도 똑같다. 결혼, 육아 파티플을 잘 해냄으로써, 우리 부부는 가정의 평화를 이룩한 영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