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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Aug 20. 2022

잠자기, 약, 미라클 모닝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리다.

"약을 처방해드릴게요. 수면제나 그런 건 아니고, 잠을 조금 더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아기가 울면 바로 깰 정도만요. 너무 걱정 마시고, 애기 잘 때 같이 주무세요. 잠이 정말 중요하죠."


아침, 머리가 안 아프다



알람 시계에 눈을 뜬 건 정말 오랜만이다. 요즘은 한 밤중 아기 울음소리에 잠이 깨서, 뜬 눈으로 새벽을 새곤 했다. 오늘 밤엔 꿈도 꾸지 않았다. 옆구리가 뜨끈해서 돌아보니, 우리 아들이 기대서 쿨쿨 자고 있다. 애가 옆구리를 찔러도, 몸을 타고 넘어도 개의치 않고 잘 잤나 보다.


아들을 안고 거실로 나왔다. 몇 주째 고생하던 어깨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깨 끝에서 뒤통수 아래까지 찌릿하던, 아무리 마사지를 받아도 풀리지 않던 강력한 통증이었다. 혹시 했지만, 역시나 잠 부족 때문이었나 보다.


엄마, 아빠 그리고 아기가 푹 자고 일어났다. 다 함께 부은 얼굴로 웃으며 아침을 맞이했다.



낮, 일이 참 할만하다.



회사 일도 수월했다. 일이 많은 날이라 걱정했는데, 의외로 이메일이며 보고서가 술술 써졌다. 회사 글쓰기는 컨디션 리듬을 많이 타는 작업인데, 탄력을 받았는지 오전에만 기안서 1개와 보고서 2개를 뚝딱 해치웠다.


빨간펜으로 '오늘의 할 일'을 죽죽 긋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었다. 한 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회사 근처를 잠시 산책했다. 바람이 시원해서 숨쉬기가 편했다. 남은 오후도 잘 지나갈 거라고, 오늘은 참 괜찮은 하루라고 생각하며 늦여름 하늘 아래를 걸었다.



저녁, 따뜻한 식탁과 가족



남편이 양손 가득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사 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밥은커녕, 이제 막 퇴근한 남편한테 애를 떠넘기고 소파에 드러눕기 바빴다. 너무 피곤하고, 졸린데 잠은 안 오고,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오늘은 다르다. 카톡으로 쌩쌩하게 대화도 많이 하고, 이따 저녁에 맛있는 거 사 오라고 애교도 부릴 만큼 컨디션을 회복했다. 남편도 칼퇴하고 유달리 활짝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 가득 음식을 차려 먹고, 남편이 아기와 노는 동안 잠시 혼자 쉬다가, 목욕 & 분유까지 먹은 아기를 받아서 잠을 재웠다. 금요일 밤, 육퇴(육아퇴근)한 부부는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며 놓쳤던 우영우를 함께 봤다. 평범하고 익숙했던 일상의 편안함이 참 반갑고 따뜻하다.




Good Morning = Miracle Morning / Image from pixa


미라클 모닝이 뭐 별건가? 잠 잘 자고 일어나서, 눈이 시원한 아침을 맞이하고, 오늘 하루도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그게 바로 기적이다.


일과 육아, 워킹맘의 일상은 체력전이자 정신력 싸움이라고 배웠다. 선배, 친구, 맘까페의 수많은 글들이 그렇게 말했다. 잠 깨서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는 아기를 혼자 감당하지 못할 때, 육아의 피곤함을 회사까지 가져갈 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좌절하고 실망했다. 시간이 약이라지만, 그 약만 기다리다간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았다.


망설이다가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았다. 생각보다 빠르고, 편하고, 아무렇지 않았다. 알약 하나로 일상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니, 왜 혼자 사서 고생했는지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는 강인한 워킹맘 선배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하지만 주변의 도움을 다 챙기면서, 굽이굽이 돌아가는 워킹맘의 삶도 실용적이고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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