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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Mar 19. 2023

10년 동안 5명의 아이를 키웠다

에콰도르, 필리핀, 모잠비크, 우간다, 탄자니아


2011년 인턴십에 합격하면서 해외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당시에 좋아하던(지금은 아니지만) 작가가 홍보대사로 있던 기아대책 해외아동 결연 후원 프로그램이었다. 후원금은 월 30,000원.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돈이지만 과감히 신청했다. 앞으로의 사회생활 행운을 비는 세속적인 욕심도 조금 섞여있었다. 신청한 지 일주일이 안 돼서 결연 아동 정보를 받았다. 에콰도르의 여자아이였다. 밝고 똘똘한 아이 사진을 보고 나는 내 앞날도 계속 창창할 것이라 자신했다.


2012년, 인턴십을 끝내고 첫 정규직 취업에 성공했다. 스스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진정한 어른이 된 것이다. 월급도 많이 올랐다. 기쁘고 호기로운 마음으로 해외아동을 추가 결연했다. 사회인이 되었으니 그간 받았던 사랑과 지원을 세상에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결연 아동은 필리핀 여자아이. 그때부터 매월 1일마다 통장에서 60,000원씩 빠져나갔다. 3,000원 × 20일 = 60,000원. 매일 출근길에 3,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사 먹는 셈 치고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나는 불교 신자이므로 착한 일을 하면 최소한 다음 생에선 보상받으리라 믿으면서.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매월 60,000원씩 빠짐없이 결제하면서 지금까지 총 5명의 아이를 후원했다. 에콰도르, 필리핀, 모잠비크, 우간다, 탄자니아.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동으로 다른 아이가 새롭게 매칭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 즉 졸업 후 취업을 하던 공부를 더 하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그 나라의)어른이 된 아이를 총 3명 길러냈고, 2명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10년 동안 납부한 후원액은 대략 7,000,000원. 이렇게 모아놓으니 꽤 큰돈이지만, 어디다 썼는지도 모를 만큼 어영부영 쓰는 것보단 훨씬 가치 있는 투자였다고 믿는다. 겨우 몇 백만 원으로 아이들의 엄마였다고 자칭하긴 부끄럽고, 그냥 어딘가에서 널 응원하는 키다리 아줌마 정도면 충분했다.


그 사이 나도 진짜 부모가 되었다. 2021년 내 아들 민준이를 낳으면서 나는 생물학적/사회적으로 진정한 엄마가 되었다. 700만 원이 아니라 7억 원이 들어갈 인생의 투자였지만 결과는 무조건 해피엔딩일 것이라 예상했다. 부자 엄마는 아니지만 물질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결코 부족하지 않겠다고 갓 태어난 아이 얼굴에 대고 맹세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정말 힘든 맹세를 해버렸다고 아주 가끔(보단 자주) 생각하지만 그래도 예상 결과는 무조건 해피엔딩이다. 아이가 주는 행복과 만족감은 돈과 체력 그리고 정신력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크고 높았다.


작은 사고로 잠시 병원에 입원하고, 오늘 아이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왜 거기 있어?'를 묻는 듯 똥그래진 눈으로 계속해서 핸드폰 화면을 가리키는 내 아이가 너무너무 사랑스러웠다. 간신히 통화를 마치고 행복하게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그간 후원했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내 얼굴도 모르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아이들이 결국 내 아이 민준이의 행운이 되겠구나! 근거 없는 깨달음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믿고 싶은 교리만 골라 믿는 불량 신자일지언정 어릴 때부터 불교 신자였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업보와 윤회 사상으로, 내가 과거 혹은 현재에 저지른 착한 일과 나쁜 짓은 어떤 형태가 되었든 결국 나한테 돌아온다는 사상이다. 현생이 아니면 다음 생에라도 반드시 돌려받는다는 그 말이, 참 냉정하면서도 공평하게 느껴졌다. 종교를 떠나서 꼭 그랬으면 좋겠다. 현생에선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권력자라도 다음 생에선 최악의 불쌍한 인생을 살 것이고, 오늘 투자한 60,000원의 푼돈이 미래 혹은 다음 생에선 6,000,000원 이상의 가치로 돌아오진 않을까 기대한다. 그렇게 믿으면서, 대단한 선행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남에게 조금이라도 베풀며 살자고 하루하루 다짐한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겠어?' 싶을 만큼 공허한 날도 있다. 훗날의 나는 그저 갑자기 굴러들어 온 행운이라 믿을 것 같고 혹은 현생에 돌려받아야 의미가 있지 기억도 못하는 다음 생이 뭔 상관일까 싶기도 다. 하지만 오늘 민준이와의 영상 통화를 통해서, 행운을 돌려받는 주체가 꼭 내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깨달았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내가 나 이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대신 받는다면 그것대로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러길 바란다. 나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살면서 더 많은 것을 보고 겪을 내 아이의 앞 길이 조금이라도 수월해진다면, 60,000원이 아니라 600,000원이라도 매월 적금 넣듯 차곡차곡 투자할 것이다. 진짜로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 밤엔 정성을 담아서 불경이라도 외우고 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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