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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Jul 05. 2022

학술 마케팅과 괴벨스

보톡스 내성 공포증은 어떻게 마케팅되는가?

* 본 글에 명시된 보톡스는 앨러간 브랜드가 아닌, 보툴리눔 톡신의 일반 명사 의미로 쓰였습니다.


1. 학술 마케팅이란?



(Image from Medical Observer)


제약 마케터는 의약품을 다루기 때문에, 제품 홍보 메시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의약품 임상 자료나 특정 질환/치료에 대한 논문이 대부분이며, 때로는 연구소나 판매 데이터 등 회사 내부 정보를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약사법, 공정경쟁 규약(CP) 등 일반 소비재에 비해서 훨씬 엄격한 규제가 적용된다.


보톡스도 의약품이기 때문에, 모든 마케팅 활동은 과학적 근거 중심의 '학술 마케팅'으로 진행돼야 한다. '우리 보톡스가 최고입니다!'라고 말하고 싶다면, 무엇이/왜/어떻게 최고인지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모든 보톡스 제품과의 비교 임상 결과를 보여주거나, 하다못해 공신력 있는 판매 실적 데이터라도 제시해야 한다.) 만약 근거 없는 허위/과장 광고임이 발각될 경우, 최악엔 판매 허가 취소나 형사처벌까지 이뤄질 수 있다.


의약품은 잘못 사용되었을 경우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등 중대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전체 과정에 있어서 높은 윤리 수준이 요구된다. 이런 이유로 다른 산업에 비해서 근거 중심 마케팅의 중요성과 정부 차원의 규제 정책이 강력한 편이다. / 보건복지부 '제약 마케팅' 책 내용 中



2. 보톡스도 학술 마케팅을 할 수 있을까?



Beauty라는 심미적 주제를 다루는 보톡스 산업이라 할지라도, 철저한 제약 마케팅의 범주 안에서 홍보해야 한다. 그래서 보톡스 브로셔를 살펴보면, '아름다움' 같은 형용사보다는 '유효성'이나 '안전성' 같은 다소 딱딱한 메시지와 전혀 심미적이지 않은 학술 그래프 및 도표로 채워져 있다.


(구글에서 검색한 보톡스 브랜드의 브로셔 내용. 딱딱한 그래프와 도표로 채워져 있다.)


보톡스 마케터로서 항상 근거 중심의 마케팅을 추구한다. 하지만 가끔은, 시장이 꼭 학술적으로 돌아가진 않는다고 느낀다. 오히려 대중의 인지도 대비 폐쇄적인 유통 구조 때문에, 보톡스 시술을 받는 소비자들은 서로 상반되는 학술 정보들로 인해 헷갈려한다. '보톡스 내성 공포'가 대표적인 사례다.


(보톡스 유통 구조. 전문의약품이기 때문에, 제약회사는 오직 의사에게만 제품 홍보를 할 수 있다. 일반 소비자는 의사를 통해서 제품과 시술 정보를 듣는다.)



3. 보톡스 내성 공포증



보톡스가 처음 알려진 2000년대 초반, '보톡스를 자꾸 맞으면 중독된다'는 괴담이 퍼졌다. 과도한 보톡스 시술로 얼굴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진 여성의 사진도 같이 떠돌면서, 공포 분위기를 부추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보톡스 시술은 더욱 인기가 많아졌고, 시술 비용도 100만 원에서 겨우 몇만 원 수준으로 저렴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시술을 받으면서, 괴담 메시지도 달라졌다. '보톡스를 자꾸 맞으면 내성이 생겨서 더 이상 효과가 없다더라'로, 훨씬 그럴듯한 형태로 바뀌었다.


(보톡스 시술 경험자는 한 번쯤 들어봤을 '보톡스 내성' 경고. 그런데, 의사마다 제시하는 학술 근거는 조금씩 다르다.)


새로운 보톡스 공포증은 과학적인 근거도 갖췄다. 보톡스 분자를 이루고 있는 단백질에 자꾸 노출될수록 내성 항체가 생기기 때문에, 결국엔 모든 보톡스 효과가 없어진다는 논리다. 과학시간에 배웠던 단백질, 항원/항체, 내성 단어가 들리고, 심지어 일부 의사들도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서 비슷한 경고를 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내성 유발 단백질을 제거한 프리미엄 제품이 있다. '내성을 피하고 싶으면, 이 제품으로 시술받으면 된다.' 소비자는 생각한다. '아, 보톡스 내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특정 브랜드로 시술받으면 되겠구나!'


(내성 없는 보톡스로 홍보되는 특정 브랜드에 대한 뉴스 기사 / 네이버 뉴스 캡처)


반면, 다른 메시지도 있다. '보톡스 내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특정 제품이 아니라, 정품/정량을 일정한 주기로 맞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보톡스 항체가 발생할 순 있지만, 미용 목적의 적은 용량으로 내성이 생길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러니 제품 종류와 상관없이, 정확한 부위에 정확한 용량을 시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역시 많은 의사들이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서 여러 논문 자료를 근거로 설명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괜히 비싼 제품 광고에 현혹되지 말고, 그보단 보톡스 시술 경험이 풍부한 실력 좋은 의사를 찾아라!'


(보톡스 내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 / 유튜브 캡처)


사실, 보톡스 내성 발현의 정확한 인과관계(Mechanism)는 밝혀지지 않았다. 보톡스 독소 자체에 대한 항체인지 아니면 보톡스 분자를 이루는 단백질에 의한 항체인지는 아직 불분명하고, 해당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과학적 실험 결과 논문은 아직 없다. 다만, 지금까지 쌓인 보톡스 시술 데이터와 의사들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가설이 제기되었고, 해당 가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논문과 학술 자료가 존재한다. 각각의 가설마다 제시하는 메시지와 데이터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전문가들의 설명도 상충된다. 각자의 제품에 유리한 학술 자료를 토대로, 각자의 이익에 맞는 메시지를 홍보한다.



4. 보톡스 학술 마케팅의 비결



선전의 비결이란, 상대가 선전인 것을 전혀 알지 못하도록 해서 선전의 이념에 흠뻑 젖게 하는 것이다. / 파울 요제프 괴벨스



학술 마케팅의 비결은, 과학적/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상대방이 홍보 인지도 모르게(혹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게끔 만드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믿는 메시지를 여러 학술 자료로 무장해서 더욱 강력한 스토리로 키워가는 일인 것도 같다.


'보톡스 내성 공포증'은 전혀 근거 없는 괴담은 아니다. 보톡스 내성은 실제 한다. 다만, 정확한 발현 기전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여러 가설이 제안되었고, 전문가들은 각자가 믿는 가설이 왜 맞는지에 대해서 학술 자료를 근거로 설명한다. 보톡스 마케터나 시술 병원은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자료를 근거로, 그들의 마케팅 메시지를 개발하고 홍보한다.




현업에 종사하는 마케터로서, 나 역시 '내성 공포증'에 대응하기 위한 메시지를 홍보한다. 다만, 선한 의도에서 출발하려 노력한다. 아무리 학술 근거를 내놓더라도, 단순 이익만을 좇는 메시지는 결국 소비자가 알아채고 거부할 것이다. 그렇기에 내 제품에 대한 학술 홍보일지언정, 결국엔 고객을 위한 올바른 정보로 받아들여지도록, 선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일하려 한다. 메시지에 담긴 진심을, 고객은 결국 알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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