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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Jul 26. 2022

필러를 처음 맞은 날, 많이 울었다.

아직은 꽤 쌀쌀했던 2013년 3월, 회사에서 영업사원 대상 필러 제품 교육이 있었다. 새로 출시될 신제품에 대한 교육이었는데, 실제 성형외과 병원 원장으로부터 듣는 제품 시연 과정도 있었다. 오후 4시까지 빠르게 업무를 마치고, 압구정동 O성형외과에 모였다.


마케팅팀의 신제품 특장점 소개로 교육이 시작됐다. 짧은 교육 후 10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갑자기 마케팅팀 과장님이 나를 불렀다. 병원 구석에서 손짓하는 과장한테 다가가니, 팔짱을 끼고 귓속말로 속삭였다.


- 나우나우씨, 혹시 필러 맞아본 적 있어?

- 아뇨, 아직 없어요.

- 잘됐네! 이따 H원장님이 필러 라이브 데모(Live-Demo. 앞에서 강연자가 직접 제품 시술 과정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강의)를 하실 건데, 나우나우씨가 맞으면 돼.

- 네? 과장님 저.. 무서운데..

- 이거 돈 주고 맞으면 30만 원도 넘어! H원장님은 필러 시술도 잘하는 분이시고, 이런 건 여자가 맞아야 결과 팔로업도 좋지. 나우나우씨 알았지? 이따 내가 부르면 앞으로 나와.


앞에선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난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아니, 귀에 하나도 안 들어왔다. 회사에 입사하면서 보톡스/필러 시술 후기를 찾아봤었다. 필러는 꽤 아프다는 후기가 생각났다. 어느 병원에선 신경 마취까지 하고 난 후 필러 시술을 한다고 했다. 두려운 마음에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다른 사람이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20명가량의 영업사원 중 여자는 나 혼자였다. 아프면 어떡하지, 아픈 티를 내면 안 될 것 같은데 잘할 수 있을까, 신제품이면 아직 아무도 안 써본 거 아닌가, 진짜 마루타 노릇까지 해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에 머리가 멍해질 무렵, 어느새 이론 강의가 끝나버렸다.




모두들 시술 방으로 이동하는데, 간호사가 나를 따로 불러서 코에 마취크림을 발라줬다.


- 저기.. 이거 많이 아픈가요?

- 뭐 좀 따끔하긴 한데, 하고 나면 이뻐질 거예요.

- 마취크림 좀 많이 발라주세요.

- 충분히 발랐어요. 랩으로 감싸고 있다가, 원장님이 호명하면 시술 침대에 누우세요.


덜덜 떨면서 기다린 지 겨우 5분 정도 됐을까. 원장님이 데모 환자 앞으로 나오라고 호명했다. 아직 마취가 다 되기엔 이른 것 같았지만, 간호사는 이미 내 코에 묻은 마취크림을 닦아낸 후 시술 침대에 눕혔다. 주먹 쥔 양손이 계속 부들댔다.


드디어 원장님이 시술대로 오셨다. 디자인 펜으로 필러 주입 위치를 표시하면서, 오똑한 코를 만들려면 콧대보다는 코 기둥을 세워야 하는데, 특히 부작용이 잘 생기는 부위이니 주의해서 시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작용' 세 글자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코 혈관이 막혀서 피부가 괴사 되었다던 강의 사진이 눈앞에 떠올랐다. 눈동자를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콧대 필러. 매끈한 코 라인을 만들어준다.)


알콜솜의 알싸한 냄새가 났고, 눈썹 사이로 주사 바늘이 들어왔다. 따꼼/투둑 하는 느낌과 함께 코가 점점 무거워졌다. 아, 지금 콧대에 필러가 들어오고 있구나, 생각보다 아프진 않네 하고 안심했다. 코 라인을 잡는다며 손가락으로 마사지할 때도, 뭔가 코를 덮고 있다는 이물질 무게만 느껴졌을 뿐 크게 아프진 않았다. 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주먹 힘을 뺐다.


- 자, 콧대가 매끈해졌죠? 이제 코 기둥을 세울게요.


(코 기둥 필러. 오똑하게 솟은 코를 만들 수 있다.)


코 기둥은 인중 위쪽에서 채워야 한다는 설명과 함께 주사 바늘이 느껴졌고.. 나는 성급하게 긴장을 풀어버린 것을 후회했다. 살면서 코 기둥 통증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난 한 번도 없었고, 그래서 코 기둥이 아프면 어떤 느낌일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좁디좁은 물렁뼈와 피부 사이로 단단한 필러가 비집고 들어오는데, 빈 공간이 없으니 억지로 터널을 뚫어야 했다. 딴딴한 알갱이가 코 기둥 뼈를 쓸고 긁으면서 밀려오니, 정말 너무 아팠다. 흡! 하고 숨 참는 소리를 내면서 상체를 움찔하니, 옆에 있던 간호사가 내 팔과 가슴을 잡아 눌렀다. 지금 움직이면 피 본다는 것을, 굳이 말로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은 꼭 감고, 어깨부터 주먹까지 덜덜 떨면서 이를 꽉 물었다. 주먹 쥔 손에 땀이 흥건하게 찼다.


- 이제 코가 높아졌죠? 근데 아직은 충분히 오똑하지 않네요. 코 끝을 채워주면, 좀 더 오똑하고 세련된 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코 끝 필러. 봉긋하게 솟아오른 입체감을 줄 수 있다.)


코 끝을 손가락으로 조물대며 빈 공간을 찾는가 싶더니, 갑자기 주사 바늘이 들어왔다. 방금 전 기억으로 긴장을 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읍!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코 끝은 말랑거려도, 사실 살이 아니라 물렁뼈다. 거기에 주사침이 들어왔으니, 뼈가 찔린 느낌이었다. 딴딴한 필러가 뼈를 누르면서 압박하는데, 누가 코 끝을 뾰족한 집게 세게 꼬집는 것 같았다. 결국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심지어 입을 앙다물고 울어서, 누가 봐도 너무 아파 보이는 표정을 지어버렸다. 누군가 내 손을 감싸 잡아줬다. 아마도 마케팅팀 과장님인 것 같다.


드디어 코필러 시술이 끝났다. 벌건 얼굴로 간신히 눈을 뜨고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원장님이 턱 끝을 손가락으로 조물거렸다.


- 코가 오똑해졌는데, 턱이 너무 뭉툭해서 옆 라인이 아름답지가 않네요. 이럴 땐 턱 필러를 같이 넣어주면 좋아요. 부드러운 옆 라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턱 필러. 턱 끝을 필러로 채움으로써, 아름다운 곡선의 얼굴 옆 라인을 만들 수 있다.)


턱은 마취크림도 안 발랐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원장님은 디자인 펜으로 주사 부위를 그리기 시작했고.. 나는 차마 도저히 못 맞겠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냥 모든 걸 체념하고, 다시 눈을 감고 어금니를 꽉 물었다.


턱 필러는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다만 들어가는 필러 양이 많아서인지, 묵직한 무게감이 더 느껴졌다. 걱정했던 만큼 아프진 않아서인지, 필러 시술이 끝나자마자 바로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그런데 꽉 잡고 있던 얼굴 긴장까지 같이 풀려버려서, 참았던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침대를 내려올 때는 흐느끼기까지 했다.




교육이 끝나고 영업부 회식이 뒤따랐지만, 나는 참석할 수 없었다. 눈물에 퉁퉁 불어서 얼굴이 시뻘게진 신입사원을, 부장님도 팀장님도 차마 회식에 부를 수 없었다. 손에 현금을 쥐어주고, 수고했다 얼른 택시 타고 집에 가서 쉬라고 나를 보내줬다. 꾸벅 인사하고 뒤돌자마자 엉엉 울면서 큰 도로를 향해 걸었다. 아프진 않았다. 그냥 서럽고, 부끄럽고, 쪽팔려서 울었다.


이런 얼굴로 집에 갈 순 없어서 조금 더 걸으며 스스로 진정시켰다. 눈물을 그치고 지금 몇 시인지 확인하려 핸드폰을 켰는데, 부재중 전화 5통에 카카오톡 메시지 7개가 와있었다.


(부재중 카카오톡 메시지 7개)


울어서 쪽팔린 마음에 미안함까지 더해져서,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사실 나도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잘 모른다. 아픈 것 보다도, 아직 출시 전 제품을 첫 번째 케이스로, 그것도 다른 직원들 앞에서 본보기로 시술받은 것에 대한 신입사원의 서러움이었던 것 같다. 되돌아 생각해보니, 딱히 서러울 것도 없었다. 오히려 필러 전문가에게 공짜로 시술받는 흔치 않은 혜택이었다. '신입이니까 너가 마루타 시술받아'가 아니라, '좋은 기회니까 홍일점 막내한테 주자'는 선배들의 배려였다. 하지만 갓 대학교를 졸업한 신입이기에, 선배들의 호의를 받는 것 마저 미숙했다. 그게 부끄러워서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카카오톡 메시지는 그런 나의 실수마저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고마움에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얼른 써 내려간 회신 메시지. 부끄럽고 고마운 마음에, 흔들리는 택시 안에서도 멀미 하나 하지 않았다.)


회신을 하는 동시에 세 명한테 연속으로 전화가 왔다. 다시 한번 괜찮다고, 울어서 죄송하다고 거듭 말하면서 집에 도착했다. 덕분에 택시 멀미도 안 하고, 부끄러움과 고마움과 진짜 코가 높아졌는지에 대한 기대감을 가득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최근 퇴사하는 후배와 커피를 마셨다. 홀짝이다가, 대뜸 질문 하나를 받았다. '과장님은 첫 회사 퇴사하고 지금까지 몇 명이랑 연락하세요?' 뭔 소린가 싶었지만, 괜히 선배 체면을 차리고 싶어서 곰곰이 생각한 후 대답했다. '글쎄.. 안부를 묻거나 정보를 주고받는 사람은 한 5명쯤?' '역시.. 누가 그러는데, 진짜 일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퇴사해도 5명 이상이랑 연락하고 지낸대요. 과장님 역시 능력자네요!


뭐래 하고 웃으면서도, 머릿속으론 퇴사했던 지난 회사 생활을 빠르게 복기했다. 10년 직장 생활의 시작점에서, 세 명의 선배가 생각났다. 필러를 처음 맞고 엉엉 우는 신입사원을 진심으로 위로해준 선배들. 아직까지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다.


문득 진심 어린 미소와 함께 행복감이 차올랐고, 정말 잘 살아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맞은편에 앉아서 스타벅스(에서 제일 비싼) 시즌 음료를 홀짝이는 후배가 갑자기 예뻐 보였다. 이런 기분을 안겨줘서 고마웠고, 나도 그녀에게 좋은 선배로 기억되고 싶었다. 퇴사해도 여기 사람들 다 버리지 말록,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니까 가끔 안부도 물으면서 끊을 놓지 말라고, 좋은 선배라면 건네줄법한 조언을 남겼다. 그닥 감명받진 않은 표정의 후배였지만, 그래도 뭉클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저 마셨다.




첫 필러 시술의 기억은 당황스러움과 서러움, 부끄러움과 따뜻한 포근함이 함께 공존한다. 필러보다는, 막내 사원의 어리숙함을 보듬어준 선배들의 배려가 더 기억나기 때문이다. 10년 차 과장이 된 지금에도, 당시 선배들로부터 받았던 배려가 밑거름으로 남아있다. 퇴사하는 후배에게, 아직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나도 밑거름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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