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를 선배로 만들어주는 카페 토크
회의를 끝낸 팀장이 말을 건다. 뭔 일이 터졌나 보다. 카페에서 얘기할 만큼 심각한 일인가 걱정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 팀장님, 무슨 일 있어요?
- 어, 전무님이 갑자기 미션을 주셔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 테니까, 내 건 아이스 라떼로 주문해 줄래?
아이스 라떼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와서 무슨 일일지 생각했다. 8월 초순, 하반기 마케팅 계획 발표를 막 끝내고, 조금 한가해진 시점이었다. 이제 숨 좀 돌리나 했는데.. 자리로 돌아오는 팀장을 발견하고,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자세를 고쳐 앉았다.
- 전무님이 내년도 사업계획을 미리 해보라고 하시네.
- 이제 8월인데요?
- 응, 자세한 분석보다는 액션 플랜 위주로. 예산은 신경 쓰지 말고, 진짜 창의적인 아이디어에만 집중하래.
- 아니, 근데 팀장님..
시장분석 없는 액션 플랜의 실효성을 말하려는 찰나, 팀장이 추가 미션을 말해준다.
- 각 품목 PM(Product Manager) 별로 사업계획을 만들고 발표해야 돼. 임원들 앞에서 PT 컨테스트로.
- 네??
- 우리 매번 하던 것처럼만 하면 돼. 1등은 상금도 있어. 나도 도와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미션 배경과 내용을 말해주는 팀장을 앞에 두고, 멍하니 커피 잔만 응시했다. 바쁜 일을 끝내고 겨우 숨통이 트였는데, 왜 일부로 시련을 만들어 주는 걸까. 전무는 우리가 그렇게 맘에 안 드나. 울컥 올라오는 화를 차가운 커피로 가라앉혔다. 앞에 홀짝거릴 커피가 있어서,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짜증을 막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뚱한 표정으로 앉은 날 바라보며, 팀장이 한숨 섞인 위로를 건넨다.
- 힘들지?
- 아니에요.
- 나도 힘들다. 발표는 네가 하지만, 디렉팅은 내가 하니까. 어차피 팀 평가인 거야.
- ..
- 뜬금없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도 어쩌겠냐. 우리 보스 지시인데.
- 전무님은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예요?
-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본부장님이랑 전략팀에 뭔가 보여주고 싶으신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요새 마케팅팀이랑 기획팀이랑 사이 애매한 거. 시장 전략의 주체는 우리라는 걸 보여주시려나 봐.
전무 지시에 대해서, 팀장 본인의 생각도 말해준다.
- 컨테스트 형식이 좀 불편하긴 한데, 그래도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해. 마케팅 전략을 낼 때마다 기획에서 사사건건 참견하잖아? 우리 상위 조직도 아닌데, 나도 가끔 기분 나빴거든. 마케팅의 꽃은 플래닝이니까, 그걸로 본부장님한테 마케팅과 기획은 다르단 걸 보여드리자. 나랑 전무님도 최대한 지원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우린 다 같은 팀인 거야.
'같은 팀' 세 글자가 유독 크게 다가왔다. 회사를 상대할 때, 마케팅 몫을 찾아올 때는 전무도, 팀장도, 나도 모두 한 팀이다.
한 팀으로써 미션을 어떻게 준비할지 팀장의 의견이 이어졌다. 아까와는 다르게, 팀장 말에 집중했다. 단순한 직장 상사의 지시가 아니라, 같은 팀원으로써 왜 일을 해야 하는지 나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기 싫다고 퉁퉁 대는 후배를, 선배로써 보듬어 가겠다는 팀장의 진심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오후의 조용한 카페 안에서, 향긋한 커피로 목을 축이며, 팀장과 열띤 회의를 이어갔다.
나는 커피 잘 사 주는 팀장님이 좋다. 회사에서는 지시를 주고받는 팀장과 팀원이지만, 카페에서는 좀 더 진솔하게 대화하는 선배와 후배가 된다. 감미로운 카페 음악과 고소한 커피 향이, 서로를 더욱 편하게 대하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오늘도 팀장님께 말해본다. 팀장님, 커피 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