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회사란 무엇일까?
오전에 상무한테 왕창 깨졌다. 우리가 제출한 매출 계획이 마음이 안 든다고,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 다시 제출하라고, 우리 팀 전체가 상무에게 욕먹었다. 개새끼 소새끼부터 삿대질까지, 한 시간 내내 시달렸더니 귀가 다 멍했다.
드디어 회의가 끝났다. 자리로 돌아왔지만, 사무실 공기가 답답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다 함께 회사 앞 카페로 나왔다. 바깥바람이 막힌 속을 쓸어주었다. 커피를 주문 하자마자, 팀장이 한숨과 함께 말을 건넸다.
"나우나우야, 좋은 회사는 대체 뭘까? 매년 연봉을 높이면서 오래 다닐 수만 있다면, 여기가 나한텐 가장 좋은 회사일까? 난 이제 잘 모르겠다."
좋은 회사의 조건
팀장의 전 회사는 A그룹 계열사였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와 좋은 직원 복지로 유명한 회사였다. 당시 영업부였던 팀장은 열심히 일하면서 높은 성과를 냈지만, 젊은 조직을 추구하는 경영 정책으로 인해서 몇 년 전 우리 회사 마케팅 팀장으로 이직했다. 우리 회사는 업계에서 연봉이 높기로 유명하지만, 아직도 쌍욕과 인신공격이 횡행하는 보수적인 조직이다.
"직원을 존중하고, 교육 기회가 많고, 복지도 좋은 대신 40살까지 팀장을 달지 못하면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회사. 보수적이고, 군대식이고, 욕설도 난무하지만 돈은 많이 주면서 먼저 자르진 않는 회사. 뭐가 더 인간적일까? 어디가 더 좋은 회사일까?"
"마흔 넘은 나한테 이만큼 돈 주는 곳도 없다. 버티면 좀 나아지겠지. 그래도 상무보단 내가 더 오래 다니지 않겠냐?"
(마흔이 넘은 팀장도, 여전히 답을 찾아서 고민 중이었다)
42살의 팀장은 옵션 2의 스트레스에 괴로워하면서도, 옵션 1의 추억을 마냥 즐겁게 기억하진 못했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려고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당시 30살 주니어였던 나는, 팀장의 고민이 이해되면서도 완전히 공감하진 못했다. 그래서 입사 1년 만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옵션 2 회사를 도망치듯 퇴사했다.
완벽한 회사가 존재할까?
옵션 1과 옵션 2는 너무 극단적이다. 이 둘의 장점만 딱 갖춘, 완벽한 회사가 과연 존재할까? 그런 회사를 찾아서 3번의 이직을 했다. 사람은 경험한 만큼 성장한다고, 이직을 하면서 연봉과 처우가 좋아지긴 했다. 벌써 4번째 회사. 하지만 이곳이 완벽하게 좋은 회사인지는 잘 모르겠다.
연봉이 높으면 일이 너무 많아서 내 삶이 없다.
작은 조직은 수평적이라서 인간적이긴 한데, 연봉도 낮고 내 커리어의 성장을 확신하지 못한다.
5번째 회사로 이직하면 좀 더 완벽한 조건을 찾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니, 아마 아닐 거다. 연봉 1억 받으면서 놀고먹는 상무도, 이 회사는 발전이 없다며 욕을 하더랬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내가 저 상무 자리에 있더라도 완벽하게 만족할 순 없을 거다. 그냥, 완벽한 회사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생애주기에 맞는 조건으로 회사를 찾았다. 나는 결혼을 앞두었고, 2년 안에 아이를 갖고 싶었다. 워킹맘이 많고, 직원 복지가 좋은 회사가 유리했다. 그렇게 4번째 회사로 이직했고, 지금은 2개월 차 아들 엄마가 되어서 육아휴직 중이다.
몇 달 후면 회사로 복귀하여, 계속해서 내 커리어를 이어갈 거다. 아이가 좀 더 크면, 그때는 더 높은 연봉 더 좋은 처우를 찾아서 5번째 6번째 회사를 찾을 것 같다. 좋은 엄마와 성공한 직장인, 그 무엇도 포기하지 못하고 최적의 균형을 찾아서. 어쩌면 나는 계속해서 구직 시장을 떠돌지도 모르겠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적당한 회사를 꿈꾸며, 오늘도 나는 이력서를 점검한다.